명리자료

자평진전

우인의 굴렁쇠 2017. 9. 20. 21:43

子 平 眞 詮

□ 卷一

○ 十干十二支를 논함.
天地 사이는 하나의 元氣일 뿐인데 이에 動과 靜이 있어서 마침내 陰과 陽으로 나누어지며 老와 少가 있어서 드디어 四象으로 나누어지는 것이니 老는 한껏 動하고 한껏 靜한 때이니 이것이 곧 太陽과 太陰이며 少는 처음으로 動하고 처음으로 靜한 때이니 이것이 곧 少陰과 少陽이다. 이러한 四象이 있고 五行이 그 가운데에 갖추어지는 것이니 水는 太陰이고 火는 太陽이며 木은 少陽이고 金은 少陰이며 土는 陰陽, 老少와 木, 火, 金, 水의 造化된 氣가 응결된 것이다.

이러한 오행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다시 또 十干과 十二支가 있는가? 무릇 陰과 陽이 있어서 그것을 근거로 오행을 이루었으므로 五行 가운데에 각각 陰과 陽이 있는 것이니 곧 木으로써 논하자면 甲과 乙은 木의 陰과 陽인데 甲은 乙의 生氣 乙은 甲의 形質이니, 하늘에서 만물을 생성하는 氣가 되어 만물에 유행하는 것은 甲이며, 땅에서 만물이 되어 이 生氣를 받는 것은 乙이다.

다시 또 이것을 세분하면 生氣가 흩어져 분포된 것이 甲중의 甲이고, 生起가 응결하여 이루어진 것이 甲 중의 乙이며, 萬物에 枝葉이 있게 된 것은 乙 중의 甲이고, 모든 木의 枝와 葉은 乙 중의 乙이다. 五行 木이 甲노릇 할 때를 당하여는 乙의 生氣가 이미 갖추어져 있으며 乙노릇 함에 이르러서는 甲의 形質이므로 곧 견고한 것이니, 이러한 甲과 乙이 있어서 木의 陰陽이 갖추어지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다시 또 寅과 卯가 있는가? 寅과 卯는 다시 또 甲乙과 함께 陰과 陽, 天과 地로 나누어서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甲乙로써 陰陽을 구분하면 甲은 陽이 되고, 乙은 陰이 되니 木이 하늘에서 운행하면서 陰과 陽의 역할을 하는 경우이며 寅卯로서 陰陽을 구분하면 寅은 陽이 되고, 卯는 陰이 되니 木이 땅에 있으면서 陰과 陽의 역할을 하는 경우이며, 甲乙, 寅卯를 한데 묶어서 陰陽을 구분하면 甲乙은 陽이 되고 寅卯는 陰이 되니 木이 하늘에서 象을 이루고 땅에서 形을 이루는 경우이다. 甲乙이 하늘에서 운행하면 寅卯가 그것을 받으며 寅卯가 땅에 있으면 甲乙이 거기에 베푸는 것이니 그러므로 甲과 乙은 官長과 같고, 寅과 卯는 맡아서 다스리는 지방과 같은 것이며, 甲의 祿은 寅에 있고, 乙의 祿은 卯에 있으니 이것은 府의 관리는 郡에 있고, 縣의 관리는 邑에 있으면서 한 달 동안의 正令을 시행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甲과 乙은 天에 있으므로 움직이고 머물러 있지 않는데 寅을 月建으로 하는 달에는 어째서 반드시 항상 甲이 되며, 卯를 月建으로 하는 달에는 어째서 항상 乙이 되는가? 寅과 卯는 地에 있으므로 머물러 있고 옮겨 가지 않으니 甲이 비록 순차적으로 자리를 바꾸더라도 그 달에는 반드시 寅에 서게 되며, 乙이 비록 순차적으로 자리를 바꾸더라도 그 달에는 반드시 卯에 서게 되기 때문이다. 氣로서 논하면 甲이 乙보다 旺하며 質로서 논하면 乙이 甲보다 견고한 것인데 세상에 나도는 책에 잘못 논하기를 甲을 大林이라 하여 무성하므로 베어야 한다고 하고, 乙은 작은 싹이라 하여 연약하므로 傷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으니 陰陽의 이치를 알지 못하는 논리라고 말할 수 있다. 木의 이치로 미루어 추축하면 나머지도 알 수 있을 것이며 오직 土만은 木火金水의 조화된 氣이므로 四時에 붙어서 왕성하며 陰陽과 氣質의 이치도 이 이론과 같으니, 命을 배우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干支에 대한 이치를 알고 난 뒤에야 入門할 수 있는 것이다.

○ 陰陽의 生剋을 논함.
四時의 운행은 相生으로 이루어지므로 木은 火를 生하고, 火는 土를 생하고, 土는 金을 생하고, 金은 水를 생하고, 水는 다시 木을 生하니 곧 相生의 순서로 순환하면서 번갈아 운행하여 四時의 운행이 끝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生함이 있으면 또 반드시 剋함도 있어야 하니 生하기만 하고 剋하지 않으면 四時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剋이란 만물을 절제하여 멈추게 하는 것인데, 剋의 작용으로 하여금 만물을 수렴하게 하여 發洩하는 기틀로 삼는 것이니 그러므로 易에서 天地가 절도가 있어서 四時가 이루어진다고 한 것이다.

이제 木으로써 논하자면 木은 여름에는 무성하지만 가을에는 시드는데, 殺이란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으로 하여금 안으로 거두어 간직되게 하는 것이니 이 殺이 바로 生을 이루게 하는 것이며 易에서 수렴하는 것을 성정의 실제라 하고, 兌를 만물이 기뻐하는 것이라고 했으니 지극한 말이다. 사람의 양생에 비유하자면 비록 먹고 마시는 것으로 生을 이루지만 그러나 때마다 계속 먹고 마시게 하여 조금씩 굶으면서 음식 가져 올 때를 기다리게 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수명이 어찌 오래 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四時의 운행에도 生이 剋과 더불어 쓰임을 함께하며 剋이 生과 더불어 功效를 함께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행을 가지고 통괄하여 生剋을 논한다면 水와 木은 서로 生하고, 金과 木은 서로 剋하는 관계인데 五行의 陰과 陽으로써 이것을 나누어 배당하면 生하고 剋하는 가운데에 다시 또 서로 같지 않음이 있으니 이것이 水가 똑같이 木을 生하는데도 印綬에 偏과 正이 있으며, 金이 똑같이 剋하는데도 그 局에 官과 煞이 있게 되는 까닭이다. 印綬 중에는 偏印과 正印이 서로 비슷하므로 生과 剋의 차이를 버려 두고 논하지 말며, 相剋 가운데에는 官이 되기도 하고 煞이 되기도 하여 좋고 나쁨이 명확하게 구별되므로 그 이치를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甲乙, 庚辛 으로 말하자면 甲은 陽木으로 木의 生氣이고 乙은 陰木으로 木의 形質이며 庚은 陽金으로 가을 하늘의 숙살지기이고 辛은 陰金으로 人間세상의 다섯 가지 금속의 형질(바탕)이다. 木의 生氣는 木에 기탁하여 하늘에서 운행하므로 가을 하늘의 숙살지기(초목을 말라 시들게 하는 기운)를 만나면 손상당하여 위태로움이 극진하지만 금속의 형질인 칼이나 도끼로는 도리어 손상할 수 없으며, 木의 形質은 금속의 形質인 칼이나 도끼를 만나면 베어져서 남음이 없지만 숙살지기로는 다만 겉으로 쳐서 잎을 떨어지게 할뿐이고 뿌리는 더욱 견고해지는 것이니 이것이 甲이 庚을 七殺로 삼고 辛을 정관으로 삼는 까닭이며, 乙은 이와 반대이니 庚이 正官이고 辛이 七殺이다.

또 丙丁, 庚辛으로 그것을 말하자면 丙은 陽火로 따뜻하고 온화한 기운이고, 丁은 陰火로 땔나무로 전하는 불이다. 가을 하늘의 숙살지기는 만물을 생동케 하는 따뜻한 기운을 만나면 剋去되지만, 인간의 금속(辛)은 따뜻한 기운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庚은 丙을 七殺로 삼고 辛은 丙을 正官으로 삼는 이유이며 인간 세상의 금속의 形質은 땔나무로 전하는 불을 만나면 곧바로 변화되지만 숙살지기는 땔감으로 전하는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辛은 丁을 七殺로 삼고 庚은 丁을 정관으로 삼는 까닭이다. 이것을 근거로 미루어 본다면 나머지 五行의 相剋에 대한 것도 알 수가 있를 것이다.


○ 陰陽의 生死를 논함.
오행 干支에 대한 설명은 이미 干支편에서 상세히 논했지만 天干은 움직여서 쉬지 않고 地支는 고요하여 일정함이 있는데 干마다 12支의 달에 유행하므로 인하여 生, 旺, 墓, 絶이 거기에 매이게 되는 것이다.

陽은 모임을 주장하여 전진하는 것을 움직임으로 삼기 때문에 순행을 위주로 하며, 陰은 흩어짐을 주장하여 후퇴를 움직임으로 삼기 때문에 역행을 위주로 하는 것이니 이것이 長生, 沐浴등의 항목에 陽은 순행하고 陰은 역행하는 다른 점이 있는 이유이다. 四時의 운행에서 功을 이룬 것은 물러가고 쓰임을 기다리는 것이 앞으로 나오기 때문에 12支의 月에 유행할 때마다 生,旺,墓,絶이 다시 또 한결같이 정해짐이 있으며, 陽이 生하는 곳은 곧 陰이 死하는 곳이므로 피차가 번갈아 바뀌는 것이 자연의 운행이다.

이제 甲과 乙로써 논해 본다면 甲은 木의 陽이 되어 하늘의 생기가 온 나무에 유행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亥에서 生하고 午에서 死하며, 乙은 木의 陰이 되어 木의 가지와 잎으로 하늘의 生氣를 받는 것이니 그러므로 午에서 生하고 亥에서 死하는 것이다. 무릇 나무는 亥月을 만나면 마침내 가지와 잎이 벗겨지고 떨어지지만 안의 生氣가 이미 거두어 간직됨이 충만하여 돌아오는 봄에 발설할 기틀이 될 수 있으니 이것이 亥에서 生하는 까닭이다. 나무는 五月이 되면 마침내 가지와 잎이 번성하는 절후인데 甲이 무엇 때문에 死하는가? 오히려 밖으로 비록 번성하지만 안의 生氣가 이미 다 밖으로 발설되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이것이 午에서 死하는 이유이다. 乙木은 이와 반대로 五月이 되면 가지와 잎이 번성하니 곧 그의(乙木) 生이 되지만 亥月이 되면 가지와 잎이 벗겨져 떨어지니 곧 乙木의 死가 되는 것이다. 質로써 논한다면 자연히 氣와는 다르다. 甲과 乙을 예로 삼았으니 나머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地支에는 열두 달이 있으므로 각각의 干마다 長生부터 胎,養에 이르기까지 역시 열두 자리를 분담하는데 氣는 왕성한 상태로부터 쇠약해지고 衰하였다가 다시 旺盛해지므로 절목마다 세분하여 마침내 12가지를 이룬 것이니 長生, 沐浴 등의 명칭은 임시로 빌려서 形容한 말일 뿐이다.

長生은 사람이 처음 태어나는 것과 같으며, 沐浴은 사람이 태어난 뒤에 沐浴하여 때를 제거하는 것과 같고, 과일 속의 씨가 싹이 난 뒤에는 전에 입고 있던 푸른 껍질을 벗어버리는 것과 같으며, 冠帶는 형체와 기운이 점점 자라나는 것이니 사람이 나이가 많아져서 冠을 쓰고 띠를 두르는 것과 같으며, 臨官은 자라남으로 인하여 장성한 것이니 사람이 벼슬길에 나갈 수가 있는 것과 같으며, 帝王은 정성의 극치이니 사람이 임금을 보좌하여 큰일을 할 수 있는 것과 같으며, 衰는 盛함이 다하여 쇠약해지는 것이니 사물이 처음으로 변화하는 것이며, 病은 쇠약해짐이 극심한 것이며, 死는 氣가 다하여 남음이 없는 것이며, 墓는 조화가 수장된 것이니 사람이 땅속에 묻힌 것과 같으며, 絶은 앞의 氣가 이미 끊어지고 뒤에 氣가 이어져서 한데 모여 胎를 이루는 것이며, 養은 사람이 어머니 배속에서 길러지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로부터 이후에는 長生으로부터 주기적으로 순환하여 끝이 없는 것이다.

사람의 日主가 반드시 生月에서 建祿이나 帝旺을 만나야 하는 것은 아니니 곧 월령이 休,囚되어도 年이나 日,時 중에서 長生, 建祿, 帝旺 등을 만나면 곧 身弱이 되지 않으니 가령 庫를 만나더라도 또한 根이 있게 되는 것이다. 때로는 말하기를 庫에 들었으면 반드시 沖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俗書의 잘못이니 다만 陽의 長生은 힘이 있고 陰의 長生은 힘이 많이 있지 않으나 또한 약하지는 않으며 만일 庫를 만난다면 陽干은 뿌리를 갖게 되지만, 陰干에게는 쓸모없는 것이된다. 무릇 陽은 크고 陰은 작으므로 陽은 陰을 겸할 수 있어도, 陰은 陽을 겸할 수가 없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 十干 배합의 성정을 논함.
合化의 의미는 十干의 陰과 陽을 서로 배합하는 데에서 이루어지며 河圖의 數는 1, 2, 3, 4, 5를 6, 7, 8, 9, 10에 배합한 선천의 道이다. 그러므로 太陰의 水에서 시작하여 陰과 陽이 조화를 이룬 冲氣의 土에서 끝나는 것은 오행의 氣로써 그 生하는 순서를 말한 것이니 무릇 오행이 있기 전에 반드시 먼저 陰陽과 老少가 있고 그 뒤에 沖氣가 생기게 되므로 土로써 그것을 끝맺는 것이며 이미 五行이 있게 되면 만물이 다시 또 土에서 생기고 水火木金이 또 거기에 바탕을 기탁하게 되므로 土로써 그것을 선도하게 되는 것이니 이 때문에 甲己가 서로 합하기를 맨 먼저 하여 곧 化하여 土가 되며, 土는 金을 생하므로 乙庚이 金으로 化하는 것이 그 다음이며, 金은 水를 생하므로 丙辛이 水로 化하는 것이 그 다음이며, 水는 木을 생하므로 丁壬이 木으로 化하는 것이 또 그 다음이며, 木은 火를 생하므로 戊癸가 火로 化하는 것이 또 그 다음이 되어 오행이 거기에 두루 미치는데 그것을 土로써 선도하여 상생하는 순서가 자연히 이와 같은 것이니 이것이 十干이 合하여 바뀌는 이치이다.

그 合和의 性情은 어떠한가? 이미 배합이 있다면 반드시 向과 配가 있는 것이니 가령 甲이 辛正官을 쓰는 경우에 투출된 丙이 辛과 合을 이루면 그 正官은 제 구실을 하는 官이 아니며, 甲이 癸印綬를 쓰는 경우에 투출된 戊가 癸와 合을 이루면 그 印綬는 제 구실을 하는 인수가 아니며 甲이 己財를 쓰는 경우에 己가 다른 자리의 甲과 合을 이루면 그 財는 제 구실을 하는 財가 아니니 예컨대 年이 己이고 月이 甲인 경우에 年上의 己財가 月의 甲에게 合去당하게 되면 日主인 甲이나 乙에게는 몫이 없으며 年이 甲, 月이 己인 경우에 月上의 己財가 年의 甲에게 合去당하면 日主인 甲이나 乙은 여기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며, 甲이 丙食神을 쓰는 경우에 丙이 辛과 合을 이루면 제 구실을 하는 食神이 아닌 것이니 이상은 四喜神이 合으로 인하여 쓸모없게 되는 경우이다.

또 가령 甲이 庚을 만나면 七煞이 되는데 庚이 乙과 合을 이루면 七煞이 身을 공격하지 못하며, 甲이 乙을 만나면 劫財가 되는데 乙이 庚과 合을 이루면 乙이 財를 위협하지 못하며, 甲이 丁을 만나면 傷官이 되는데 丁이 壬과 合을 이루면 丁이 傷官 구실을 못하며, 甲이 壬을 만나면 효(梟, 편인)가 되는데 壬이 丁과 合을 이루면 壬이 食을 빼앗지 못하는 것이니 이상은 四忌神이 合으로 인하여 吉한 작용으로 바뀌는 경우이다.

무릇 合하는 바가 있으면 꺼리는 바도 있어서 吉함을 만나도 吉함이 되지 않고 凶함을 만나도 凶함이 되지 않는 것이니 이제 六親으로써 그것을 말하자면 가령 男子는 財를 妻로 간주하는데 財가 다른 干에게 合去당하면 財星인 처가 어찌 그 남편을 친애할 수가 있겠으며 女子는 官을 남편으로 간주하는데 官이 다른 干에게 合去당하면 官星인 남편이 어찌 그 처를 사랑할 수가 있겠는가? 이것을 배합의 성정이라고 하니 向과 配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 十干이 合하면서도 合을 이루지 못함을 논함.
十干化合의 뜻은 전편에서 이미 밝혔지만 그러나 또 合하면서도 合을 이루지 못함이 있으니 어떤 경우인가?

무릇 끼어드는 바에 막히는 경우이니 사람에 비유하면 피차간에 서로 좋아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가운데에서 그 사이에 끼어든다면 사귐이 틀림없이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가령 甲과 己가 서로 合하는 사이일지라도 甲과 己의 중간에 庚이 끼어들어 그것을 가로막기에 이르면 甲이 어떻게 자신을 剋하는 庚을 뛰어넘어서 己와 合할 수가 있겠는가? 이것은 세력에 제압되어 그러한 것이니 合하려고 해도 감히 合하지 못하므로 合이 있어도 없는 것과 같다.

또 서로 떨어진 위치가 너무 먼 경우가 있으니 가령 甲이 年干에 있고 己가 時上에 있으면 마음은 비록 서로 관계를 맺고 싶지만 처한 자리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마치 사람이 男子는 남쪽에 있고 여자는 북쪽에 있어서 서로 결합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제압되는 바가 있어서 감히 합하지 못하는 경우와는 또한 조금 차이가 있으며 合하여도 合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半合이니 그 禍와 福을 이룸이 10중에 2,3이 될 뿐이다.

또 합하면서 합하는 데에서 해로움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으니 어떤 경우인가? 가령 甲이 寅, 卯월에 태어나고 月과 時 양쪽에 辛官이 투출한 경우에 年干의 丙이 月干의 辛과 合하게 되면 이것은 하나와 합하고 하나를 남기는 것이 되어 官星이 도리어 가벼워지며, 甲이 月刃을 만나고 庚과 辛이 함께 투출한 경우에 年干의 丙이 月干의 辛과 合하게 되면 이것은 官과 合하고 煞을 남기는 것이 되어 煞과 刈이 본래대로 格을 이루니 모두 合하는 데에서 해로움이 없어지는 경우이다.
辛 甲 辛 丙
0 0 卯 0

庚 甲 辛 丙
0 0 卯 0

또 합하는데도 合으로 논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어떤 경우인가? 그것은 本身(日干)의 合이니 무릇 五陽干이 正財를 만나고 五陰干이 正官을 만나는 경우에는 모두 合을 이루는데 그것은 本身(日干) 十干이 그것과 合하는 것이므로 合去가 되지 않는다. 가령 乙日干이 庚正官을 쓰는 경우에 日干인 乙이 庚과 合을 이루면 그것은 나의 官이므로 그것은 내가 나의 官과 合하는 것이니 무엇 때문에 合去하겠는가? 그러나 庚이 年上에 있고 乙이 月上에 있으면 月上의 乙이 먼저 가서 庚과 합하여 日干은 도리어 合하지 못하니 이것은 合去된 것이며 또 가령 女子는 官을 남편으로 간주하는데 丁日干이 壬을 만나면 그것은 자신의 남편이므로 그것은 자신이 자신의 남편과 合하는 것이니 바로 부부가 서로 친한 것과 같아서 그 애정이 더욱 깊을 것이다. 그런데 壬이 月上에 있어서 年의 丁이 그 壬과 合을 이루면 日干인 丁은 도리어 合하지 못하니 이 때문에 자신의 夫星이 자매에게 合去당하여 夫星이 투출되었어도 투출된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0 乙 乙 庚
0 0 酉 0

庚 丁 壬 丁
子 0 寅 0

그러나 다시 또 爭合과 妒合이라는 말이 있으니 어떤 경우인가? 예컨대 두 辛이 丙과 合하고 두 丁이 壬과 合하는 것과 같은 종류이니 한 남편이 두 처를 취하지 못하고 한 여자는 두 남편과 짝을 이루지 못하므로 爭合과 妒合이라는 말이 있게 된 것인데 그러나 결국 合하는 뜻은 있지만 다만 정이 한결같지 않을 뿐이니 만약 두 天干이 하나의 天干과 合하는데 자리를 놓으면 완전히 다투거나 투기함이 없을 것이다. 예컨대 庚午년 乙酉월 甲子일 乙亥시일 경우에는 두 개의 乙이 庚과 合하는데 甲日이 그 사이를 떼어놓고 있으니 이것은 高 太尉(태위 : 관직명, 三公 중의 제1위)의 命으로 곧 合煞 留官이 되어 福을 줄임이 없었다.
乙 甲 乙 庚
酉 子 酉 午

지금 사람들은 命理를 알지 못하여 곧잘 本身의 合을 가지고 함부로 得失을 논하며 다시 더 가소로운 것이 있으니 옛 책에 正官은 합하면 귀하게 된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본래 그것은 지당한 논리이지만 혹은 本身의 合을 合이라고 여기기도 하고 심지어는 다른 지지의 合도 合으로 여겨서 辰과 酉의 合이나 卯와 戌의 합과 같은 종류도 모두 合官으로 간주하여 마침내 오류가 이러한 지경에 이르니 子平의 전함이 사라진 것이다.

○ 十干이 得時해도 旺하지 않고 失時해도 弱하지 않음을 논함.
옛 글에 得時하면 모두 旺함이 되는 것으로 논하고 失時하면 衰함이 되는 것으로 본다고 했으니 비록 그것은 지당한 논리이지만 또한 실제로는 행하여지지 않는 법인데 그러나 또한 활용할 수 있다고도 본다. 무릇 五行의 氣가 四時에 유행하여 비록 日刊이 각각 전담하는 계절이 있으나 그 실제로는 전담하는 계절 가운데 또 함께 보존된 것이 있으니 가령 봄에는 木이 사령하여 甲乙이 비록 왕성하지만 이때 休囚된 戊己도 天地에서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다만 시절이 물러나서 피해야 할 때를 당하여 앞을 다툴 수 없을 뿐이지 그 실제로는 봄의 흙이 어찌 만물을 생하지 않은 적이 있겠으며 겨울의 태양이 어찌 온 세상을 비추지 않은 적이 있겠는가?

더구나 八字에서 비록 月令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旺 相 休 囚는 年 月 日 時에 모두 손익의 權能이 있는 것이니 그러므로 生月에서 곧 時令을 만나지 못했더라도 年과 時에서 만일 祿旺을 만난다면 어찌 곧바로 衰弱하다고 하겠는가? 한 가지만 고집하여 논해서는 안 된다. 또한 가령 봄의 木이 비록 강하지만 金이 너무 重하면 木이 또한 위태로우니 天干에 庚辛이 있고 地支에 酉丑이 있을 경우에 火의 剋濟가 없으면 부유하지 못하고 土의 生助를 만나면 반드시 요절하게 되는 것이니 이 때문에 時令을 만나도 旺하지 못한 것이며 가을의 木은 비록 약하지만 木의 뿌리가 깊으면 木이 또한 강해지니 天干에 甲乙이 있고 地支에 寅卯가 있다면 官이 투출함을 만나도 받아들일 수 있고 木의 生助를 만나게 되면 太過해지는 것이니 이 때문에 時令을 만나지 못했어도 약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十干은 月令의 休囚만을 논하지 않고 오직 四柱의 뿌리가 있어야만 財 官 食神을 받아들이고 傷官 七煞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니 長生과 祿旺은 뿌리 중에 중한 것이며 墓庫와 餘氣는 뿌리 중에 輕한 것이다. 하나의 比肩을 만나는 것이 地支 중의 墓庫를 만난 것만 못하니 甲이 未를 만나고 丙이 戌을 만나는 것과 같은 종류이며, 乙이 戌을 만나고 丁이 丑을 만나는 것은 이러한 논리를 세우지 않으니 戌 중에 木을 간직한 것이 없고 丑중에는 火를 간직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두 개의 比肩을 만나는 것이 하나의 여기를 만나는 것만 못하니 乙이 辰을 만나고 丁이 未를 만나는 것과 같은 종류이며 세 개의 비견을 만나는 것이 하나의 長生과 祿刈을 만나는 것만 못하니 甲이 亥 寅 卯를 만나는 것과 같은 종류이며 陰의 長生은 이러한 論理를 세우지 않으니 乙이 午를 만나고 丁이 酉를 만나는 것과 같은 종류인데 그러나 또한 뿌리가 있으면 하나의 餘氣를 얻는 것에 비유한다. 무릇 비겁은 붕우가 서로 도와주는 것과 같고 통근하는 것은 집안에 머무를 수가 있는 것과 같으며 天干에 많이 있는 것이 뿌리가 튼튼한 것만 못한 것이니 이치가 본래 그러한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命의 이치를 알지 못하여 여름의 水나 겨울의 火를 보게 되면 通根 有無를 따지지 않고 곧 그것을 신약으로 간주하며 또 陽干이 庫를 만나면 壬이 辰을 만나고 丙이 戌에 앉은 것과 같은 종류인데 그것을 水와 火가 자신의 庫에 통근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심지어 刑 沖하여 庫를 열 것을 구하니 이러한 종류의 잘못된 책과 잘못된 논리는 반드시 모두 쓸어 없애야 한다.

○ 刑沖會合의 解法을 논함.
刑은 三刑이니 子와 卯, 巳와 申 등의 무리가 그것이며, 沖은 六沖이니 子와 午, 卯와 酉 등의 무리가 그것이며, 會는 三會이니 申子辰과 같은 무리가 그것이며, 合은 六合이니 子와 丑이 合하는 것 등의 무리가 그것인데 이것은 다 地支 宮의 몫으로 말한 것이니 비스듬히 대하여 충돌하여 공격한다는 뜻이며 세 방위에서 회합을 이루어 벗이 된다는 뜻이며 나란히 대하여 合을 이루어 이웃이 된다는 뜻이다. 三刑의 뜻을 취한 것에 이르러서는 우선 의심스러운 것을 빼놓을 것이니 비록 그것이 그렇게 되는 까닭을 모르더라도 命의 이치에는 또한 해로움이 없다.

四柱八字 地支중의 刑 沖은 모두 아름다운 것이 아니나 三合이나 六合으로 그것을 해제할 수 있으니 가령 甲日干이 酉월에 태어난 경우에 卯를 만나면 沖이 되는데 혹 地支 가운데 戌 이 있으면 卯와 戌이 合이 되어 沖하지 않으며, 辰이 있으면 酉와 辰이 合이 되어 沖하지 않으며 亥와 未가 있으면 卯와 亥未가 三合하여 沖하지 않으며 巳와 丑이 있으면 酉와 巳丑이 三合하여 冲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三合, 六合으로 沖을 해제할 수 있는 것이다. 또 가령 丙이 子月에 출생한 경우에 卯를 만나면 刑이 되는데 혹 地支 중에 戌이 있으면 卯와 戌이 合이 되어 刑하지 않으며 丑이 있으면 子와 丑이 合이 되어 刑하지 않으며, 亥와 未가 있으면 卯와 亥未가 三合되어 刑하지 않으며, 申과 辰이 있으면 子와 申辰이 三合되어 刑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三合, 六合으로 刑을 해제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또 해제로 인하여 도리어 刑 , 沖을 만나는 경우가 있으니 어떤 경우인가? 가령 甲이 子월에 出生한 경우에 地支에서 두 개의 卯가 서로 나란히 있는 것을 만나면 두 개의 卯가 하나의 子를 刑하지 못하는데 地支에서 다시 또 戌을 만나 戌과 卯가 合이 되면 六合은 본래 刑을 해제하는 것이지만 두 개 卯 중 하나를 合去하면 하나는 合이 되고 하나는 刑이 되는 것이니 이것이 해제로 인하여 도리어 刑, 沖을 만나는 경우이다.

또 刑 이나 沖을 三合, 六合으로 해제할 수 없는 경우가 있으니 어떤 경우인가? 가령 子年 午月이고 日이 丑에 앉으면 丑과 子가 合하여 沖을 해제할 수 있는데 時에서 巳나 酉를 만나면 丑과 巳, 酉가 三合하고 子가 다시 午를 沖하게 되며, 子年 卯月이고 日이 戌에 앉으면 戌과 卯가 合하여 刑을 해제할 수 있는데 혹 時에서 寅이나 午를 만나면 戌과 寅, 午가 三合하고 卯가 다시 子를 刑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三合, 六合이 되어도 刑이나 沖을 해제할 수 없는 경우이다.

또 刑沖으로 다른 刑, 沖을 해제할 수 있는 경우가 있으니 어떤 경우인가? 무릇 四柱 중의 刑이나 沖은 모두 아름답지 않으나 用神을 刑沖하면 특히 파격이 되므로 다른 자리의 刑이나 沖으로 月令의 刑, 沖을 해제하는 것만 못하니 가령 丙이 子月에 生하고 卯로 子를 刑하는 경우에 地支에서 다시 酉를 만나면 다시 酉와 沖이 되어 月令의 官을 刑하지 못하며 甲이 酉月에 生하고 卯日이 그것을 沖하는 경우에 時가 子位를 만나면 卯와 子가 刑이 되어 月令의 官星은 沖이 무력해지니 비록 다른 官의 刑, 沖에 의하여 六親에게 刑, 剋이 없지는 않으나 月支의 官이 오히려 남아 있어서 그 格이 파괴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刑沖으로 다른 刑, 沖을 해제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