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평진전(3권)
□ 卷三
○ 生剋의 선후에 따라 吉凶을 구분함을 논함.
月令의 用神을 사주에 배합해 보면 진실로 글자마다의 生과 剋이 있어서 吉과 凶을 구분하게 되는데 그러나 똑같이 이러한 생과 극이 있어도 先後의 사이에서 마침내 길흉을 구분하는 것이 특히 談命(운명을 말함)의 오묘함이다.
예컨대 正官格에 똑같이 財와 傷官이 함께 투출했어도 선후의 자리에 따라 차이가 있으니 가령 甲日干이 酉正官을 쓰는 경우에 丁傷官이 앞에 있고 戊財가 있다면 財로 傷官을 해소하게 되므로 곧 先運에는 귀하게 될 수 없으나 後運에는 반드시 局을 이룸이 있으며, 만약 戊財가 앞에 있고 丁傷官이 時에 있다면 先運에는 정관이 財의 생함을 만나게 되지만 後運에는 상관으로 인하여 파하게 되니 혹 上 運은 조금 순조롭더라도 종말에는 局을 이룸이 없으며 후사를 잇기도 어려울 것이다.
인수격에서 똑같이 財가 印을 파괴하는 경우에도 선후에 따라 차이가 있으니 예컨대 甲日干이 子印綬를 쓰는 경우에 己財가 앞에 있고 癸印이 뒤에 있으면 혹 부유하지는 않더라도 만년에는 조금 순조로우며 만약 癸가 앞에 있고 己가 時에 있다면 만년에도 초라할 것이다.
식신격에 똑같이 財와 偏印이 함께 투출한 경우에도 선후에 따라 차이가 있으니 가령 壬日干이 甲식신을 쓰는 경우에 庚편인이 앞에 있고 丙편재가 뒤에 있다면 만년 운이 반드시 형통할 것이니 格이 부유하게도 되고 귀함도 바라보게 되며, 만약 丙편재가 앞에 있고 庚편인이 時에 있다면 만년 운이 반드시 담담할 것이니 富 와 貴가 둘 다 공허하게 된다.
칠살격에 똑같이 財와 食神이 함께 투출한 경우에도 선후에 따라 크게 달라지니 가령 己日干이 卯月에 生한 경우에 癸편재가 앞에 있고 辛식신이 뒤에 있다면 財로써 煞用을 돕게 되지만 뒤에는 煞用이 食神에 제압되므로 大貴를 잃지 않으며, 만약 辛食神이 앞에 있고 癸偏財가 時에 있다면 칠살이 식신의 제압을 당하더라도 財가 食神을 변화하여 칠살을 돕게 되므로 貴하지 않을 뿐 아니라 後運도 쓸쓸하고 겸하여 장수하기도 어렵다.
그 밖에 이와 같은 종류들은 이것으로 본보기를 삼아 추측할 수 있는데 그러나 또한 吉凶 중에 보기가 쉬운 것을 예로 든다면 丙日干이 甲寅月에 生하고 年이 癸, 時가 戊인 경우에는 癸 官 이 甲偏印을 生할 수 있어서 戊와 合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戊는 身을 설하여 빼어나게 할 수는 있어도 甲을 뛰어넘어서 癸와 合할 수 없으므로 大貴의 格이며, 가령 年月이 戊癸이고 時가 甲이거나 혹은 年이 甲, 月이 癸, 時가 戊인 경우에는 戊가 막히는 바가 없어서 癸와 合하게 되므로 格이 크게 파괴될 것이다.
丙이 辛酉月에 生하고 年이 癸, 時가 己인 경우에 傷官은 財가 사이에 끼어 있으므로 인하여 傷官이 힘이 없으니 그 사이가 小貴가 있으나 가령 癸와 己가 나란히 있고 중간에 辛의 가로막음이 없다면 格이 다 파괴될 것이다.
辛이 申月에 生하고 年 이 壬, 月이 戊, 時가 丙정관인 경우에는 戊에 막혀 있는 壬을 근심하지 않으므로 格이 또한 貴를 허용하지만 가령 年이 丙, 月이 壬, 時가 戊이거나 혹은 年이 戊, 月이 丙, 時가 壬인 경우에는 壬이 丙을 극할 수 있으므로 그 貴를 바랄 수 없을 것이다.
이와같은 종류들은 이루다 셀 수 없으며 그 가운데의 吉凶도 거의 갑자기 깨닫기가 어렵지만 그러나 그 까닭을 세밀히 생각하면 이치가 매우 분명하니 다만 식견이 얕은 자를 위하여 말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 星辰은 格局과 무관함을 논함.
팔자의 격국은 오로지 월령을 사주에 배합하는 것이니 星辰의 좋고 나쁨에 이르러서는 이미 生하고 剋하는 작용을 하지 못하는데 다시 또 어떻게 이루고 무너뜨리는 권능을 잡겠는가? 하물며 격국에 장애가 있으면 곧 財官 같은 아름다운 것도 오히려 장애를 구제할 수 없는데 어찌 吉星이라고 논하겠으며, 格局에 쓸모가 있으면 곧 七煞이나 傷官을 어찌 凶神이라고 말하겠는가? 이 때문에 격국이 이미 이루어졌다면 가령 孤辰八煞이 사주에 가득하더라도 어찌 귀함을 손상하겠으며, 格局이 이미 파괴되었다면 혹 天德貴人이 사주에 가득하더라도 어떻게 功을 이루겠는가? 지금 사람들은 輕重을 알지 못하고 그 어떤 吉星을 보게 되면 마침내 用神을 버리고 사주를 살펴보지 않은 채 함부로 귀천을 논하고 禍福을 잘못 말하기에 이르니 매우 가소롭다.
더구나 고서 중에 이른바 祿貴라는 것은 가끔 正官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고 祿堂귀인이 아니며 또 正財가 傷貴를 만나면 기특하게 된다는 것은 傷貴란 傷官을 가리킨 것이니 傷官은 곧 財를 生하는 도구이므로 正財가 그것을 만나면 기특하게 되는 것이며, 만약 祿貴가 귀인을 가리킨 것이라면 傷貴(귀인을 손상함)는 어떤 물건이 되겠는가? 다시 또 得祿으로 인하여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得祿은 得官이니 운에서 正官의 향을 만나면 마땅히 벼슬이 오를 것인데 그러나 가령 정재격이 傷官이나 식신을 쓰는 경우에 運에서 정관이 투출되면 格이 혼잡해 지며 정관격으로 正官이 노출되었는데 運에서 다시 또 正官을 만나면 중첩되니 대체로 이러한 부류는 다만 자리에서 물러나게 될 뿐이다. 만약 祿을 祿堂으로 여긴다면 이러한 이치가 없을 뿐 아니라 게다가 또 祿을 만나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문법의 상하가 서로 맞지 않으니 고인이 글을 지은 것이 어찌 통하지 않음이 이와 같음에 이르렀겠는가?
그리고 또 女命에 貴가 많으면 속옷 바람에 춤추고 부채를 들고 노래한다(기생노릇한다)고 했는데 貴가 많다는 것은 官이 많은 것이니 여자는 官을 남편으로 간주하는 것인데 본남편이 어찌 겹쳐서 나올 수 있겠는가? 한 여자에 여러 남편이라면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일 것이니 이치가 진실로 그러한 것이며, 만약 貴를 貴人으로 여긴다면 곧 그것은 하늘의 별이지 결코 남편이 아니니 어찌 많은 것에 장애가 되어 반드시 娼妓가 되어야 하겠는가?
그리고 星辰은 명리서에서도 언급한 것이 있는데 책을 잘보지 못하는 자들이 거기에 집착하는 것이니 예컨대 “貴人의 머리 위에 財官을 대동하면 문안에 달리는 말이 가득하다”는 것은 대체로 財官은 사람의 미모와 같고 귀인은 사람의 의복과 같으니 용모가 아름다운 자가 의복도 아름답다면 더욱 드러날 것인데 그러나 실제로 財官이 格을 이루었다면 곧 귀인의 두상이 아니라도 어찌 문안에 달리는 말이 가득하지 않겠는가? 또 그리고 女命을 논하기를 “煞이 없고 二德을 대동하면 두 나라의 왕후 책봉을 받는다”고 했으니 그것은 부인의 四柱에 흉살이 없고 격국이 淸貴하며 다시 또 二德을 대동하면 반드시 영화로운 봉함을 받음을 말한 것이니 만약 오로지 二德만을 위주로 한다면 어째서 마침내 “二德을 대동하면 두 나라의 책봉을 받는다”고 말하지 않고 반드시 먼저 煞이 없어야 된다고 말하였겠는가? 만약 命에서 험한 격을 만나더라도 사주에 二德이 있으면 흉함을 만나 것이 구제됨이 있어서 위태로움을 면할 수가 있다고 말했다면 또한 그러한 경우가 있겠지만 그러나 결국에는 격국의 귀천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 外格의 쓰임과 쓰이지 않음을 논함.
八字의 用神이 이미 오로지 月令만을 위주로 하는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다시 또 外格이 있겠는가? 외격이란 대체로 월령에 용신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편의에 따라 쓰는 것이므로 외격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컨대 봄의 木, 겨울의 水, 土의 四季에 生한 것과 같은 부류는 日干과 月令이 같아서 그것을 用神으로 삼기가 어려우므로 類象格, 屬象格, 衝財格, 會祿格, 刑合格, 遙迎格, 井欄格, 朝陽格등 여러 격을 다 쓸 수 있지만 만약 월령 자체에 용신이 있다면 어째서 별도로 외격을 찾아야 하겠는가? 또 혹 봄의 木이나 겨울의 水일 때 天干에 이미 財 官 七煞 등이 있는데도 그것을 버리고 외격을 찾는다면 또한 크게 잘못된 것이니 그러므로 天干에 財가 있으면 衡財를 무엇에 쓰며, 天干에 官이 있으면 合祿을 무엇에 쓰겠는가? 고서에 “제강(月令)에 용신이 있으니 제강이 중요하다.” 하였고 또 “官이 있으면 格局을 찾지 마라.” 라고 했으니 변치 않는 논리이다.
그러나 이른바 월령에 용신이 없다는 것은 원래 월령에 본래 用神이 없다는 뜻인데도 지금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왕왕 財星이 劫財를 만나고 正官이 상관을 만나는 부류처럼 用神이 이미 파괴된 것으로 생각하여 모두 그것을 월령에는 취할 것이 없어서 月令을 버리고 외격을 취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니 잘못되고도 잘못된 것이다.
○ 宮分과 用神을 근거로 六親을 배합함을 논함.
사람에게는 六親이 있으니 이것을 八字배합하는 것도 또한 命에 있는 것이다. 宮分을 근거로 하여 六親을 배합하는 경우에는 年. 月. 日. 時도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며 祖. 父. 妻. 子도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오므로 그 자리를 가지고 서로 배합해 보면 틀림없이 그 마땅함을 이루이 변치 않는 자리이다.
用神을 근거로 六親을 배합하는 경우에는 正印은 母가 되니 자신이 나온 곳이므로 그 我를 生하는 뜻을 취한 것이며, 偏財는 我의 剋制를 받는데 어째서 도리어 父가 되는가? 偏財는 母의 남편이므로 正印이 母가 되면 偏財는 父가 되기 때문이며, 正財는 처가 되니 我의 剋制를 받는 것이므로 남편은 아내의 벼리가 되고 아내는 남편을 따른 것이며, 官과 煞은 나를 剋制하는데 어째서 도리어 자녀가 되는가? 官煞은 財가 生하는 것이므로 財가 처첩이 되면 官煞은 자녀가 되기 때문이니 比肩이 형제가 됨에 이르기까지 이치가 분명한 것이다.
그 사이에 힘을 얻음이 있나 없나와 혹 吉한가 凶한가 하는 것은 四柱에 있는 것이 年. 月에 있나 日. 時에 있나 財. 官인가 傷官. 陽刃인가를 가지고 그것이 어떤 것인가에 따라 좌우되니 그런 뒤에 六親을 用神에 배합하여 局 중에서 무엇을 喜. 忌로 삼을 것인가를 참고하여 대조하면 명확히 알 수 있다.
○ 妻子를 논함
대체로 命中의 吉凶은 더욱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응함이 더욱 영묘하니 부귀와 빈천은 자신의 일이므로 논할 것이 없고 육친에 이르러서도 처는 자신과 짝을 이르고 자식은 후계자가 되니 역시 자신에게 절실한 일이므로 命을 보는 경우에는 妻. 財.子. 祿 네 가지 일을 함께 논해야 하며 그다음에 부모는 자신이 나온 곳이므로 역시 자연히 응험이 있으니 이 때문에 제강(月令)이 힘을 얻거나 年干에 用神이 있으면 모두 부모가 모두 온전하여 힘을 얻음을 주장하는 것이며 조상과 형제에 이르러서는 심하게 응험하지는 않는다.
처로써 논해 본다면 日支가 財官이면 妻가 당연히 현귀해야 하는데 그러나 또한 日支가 財. 官인데도 처가 不利하며 傷官이나 陽刃을 만났는데도 처가 도리어 길함이 있는 것은 어째서 인가? 그것은 다 月令 用神과 배합하여 喜. 忌를 이루기 때문이니 가령 처궁에 財가 있으면 吉한 것인데 만일 印格이 그러함을 만나면 도리어 불미스럽게 되며, 처궁에 官이 있으면 吉한 것인데 만일 傷官格이 그러함을 만나면 어찌 뜻을 순종할 수 있겠는가? 처궁에 傷官이 있으면 凶한 것인데 만일 財格이 그러함을 만나면 그것으로 財를 生할 수 있고 七煞格이 그러함을 만나면 그것으로 七煞을 제압할 수 있으므로 도리어 처가 내조할 수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며, 처궁에 陽刃이 있으면 凶한 것인데 가령 財. 官. 煞. 傷 등의 격으로 사주가 이미 格局을 이루고 日主가 無氣인 경우에는 온전히 日支의 陽刃이 日干을 돕는 데에 의지하게 되므로 처가 반드시 남편을 도울 수 있는 것이니 그러한 위치는 한가지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처궁을 본 뒤에는 다시 또 妻星을 보아야 하니 妻星이란 天干의 財이다. 처성이 투출하여 局을 이루는 경우 예컨대 正官格에 妻星이 투출하거나 印星이 많은데 財를 만나거나 食. 傷格에 財星이 투출하여 用神이 되는 것과 같은 부류는 곧 日支에 用神이 없더라도 또한 내조를 주장하게되며, 처성이 투출했으나 格을 破하는 경우에 예컨대 印星이 경미한데 財星이 투출하거나 食神. 傷官 및 투출한 七煞이 財星을 만나는 것과 같은 부류는 日支에 用神이 있더라도 刑剋을 방비해야 하며, 또 妻星이 투출하여 格을 이루거나 혹은 처궁에 用神이 있더라도 日支가 刑衝되면 좋은 처를 얻더라도 해로 하기 어려움을 면치 못하며, 또 만약 妻星이 둘이 투출하고 正財. 偏財가 섞여 나왔으면 어찌 한 남편에 많은 처가 있겠는가? 역시 刑剋을 방비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자식에 이르러서는 그 자식宮의 몫을 보는 것과 자식 星이 투출한 바의 喜. 忌를 보는 것이 그 이치와 논리가 妻의 경우와 대략 같은데 다만 자식을 볼 때에는 長生沐浴歌를 또한 익숙하게 읽어야 하니 “長生은 아들이 넷인데 중순이 지나 퇴기하면 절반으로 줄고 沐浴은 두 명이니 길상을 보존하며, 冠帶와 臨官은 세 아들이 자리하고 帝王은 다섯 명의 아들이 저절로 성장하고, 衰는 두 명의 아들 病은 한 명의 아들이고, 死는 늙을 때까지 아들이 없으니 타인의 자식을 양자로 취하지 않으면 안 되고, 墓에 들어갈 때에는 요절하고, 氣를 받음이 絶이 되면 한 명의 아들이며, 胎는 첫째로 딸을 낳아 기르고 養은 아들이 세 명인데 다만 하나만 남으니 남자의 宮 가운데 자식宮을 자세히 보아라” 와 같은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長生의 논법은 陽干만 쓰고 陰干은 쓰지 않으니 예컨대 甲乙日干은 다만 庚金의 장생에 따라 巳→酉→丑으로 순행하는 局을 쓰고 辛金의 역행하는 방법인 子←申 ←局을 쓰지 않으므로 비록 책에는 正官은 딸이고 七煞은 아들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러나 甲日干이 七煞庚을 아들로 썼으니 陽局을 쓴 것이고 乙日干이 七煞辛을 아들로 썼으니 陰局을 쓴 것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무릇 木 이 日主가 되면 甲이나 乙을 따지지 않고 모두 庚을 딸로 삼는 것이니 그 이치가 저절로 그러한데 正官과 七煞에 얽매인다면 어떻게 응험할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八字가 자기 손에 들어와서 자식을 보고자 하면 먼저 時支를 보아야 하니 가령 甲. 乙이 生日이면 그 時支가 과연 庚金과의 관계가 어떠한 궁인가? 生. 旺인가 혹은 死. 絶인가에 따라 그 많고 적음이 이미 정해진 수가 있으니 그런 뒤에 時干의 자식의 별을 거기에 배합하는 것이다. 예컨대 財格이면서 時干에 食神이 투출하거나, 官格이면서 시간에 財가 투출한 것과 같은 부류는 다 時干에 用神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니 가령 時支에서 관살의 死나 絶을 만나더라도 또한 자식이 귀하게 됨을 주장하는데 다만 자식의 수가 매우 많지 않을 뿐이며, 만약 또 生이나 旺을 만난다면 기린아(재주가 뛰어난 아이)가 슬하에 가득 쌓임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만약 時干이 좋지 않거나 자식성이 투출하여 局을 破하면 官煞의 生.旺을 만나더라도 자식을 두기 어려우며, 만약 또 死와 絶이라면 자식을 바랄 바가 없으니 이것은 妻子의 대략을 논한 것이다.
○ 行運을 논함.
運을 논하는 것과 命을 보는 데에는 두 가지 법이 없으니 命을 보는 것은 四柱 干支를 月令의 喜忌와 대조해 보는 것이고 運을 취하는 것은 運 의 干支를 八字의 喜忌와 배합해 보는 것이니 그러므로 運 가운데서 運마다 한 글자를 行하니 반드시 그 한 글자를 가지고 命中의 간지와 배합하여 그것을 통합하여 보고 喜와 忌를 정하면 吉凶이 명확해 질 것이다.
무엇을 喜라고 하는가? 命 가운데서 좋아하는 神이니 내가 만나서 도움이 되는 것이 그것이다. 가령 正官이 인수를 써서 傷官을 제압하는 경우에 運에서 印綬를 돕거나, 財가 官을 生하고 身이 약한 경우에 運에서 身을 돕거나, 印綬格이 財를 대동하여 忌神이 되는 경우에 運을이 劫財이거나, 食神이 七煞을 대동하여 格을 이룬 경우에 身이 약하고 運에서 印綬를 만나거나 七煞이 겹치고 運에서 食神을 돕거나, 傷官이 印을 대동한 경우에 運이 官煞로 행하거나, 陽刃格이 官을 쓰는 경우에 運이 財鄕을 돕거나, 月劫이 財를 쓰는 경우에 運이 食傷으로 행하는 것 등이니 이와 같은 부류들은 다 좋은 운이다.
무엇을 忌라고 하는가? 命 가운데서 꺼리는 것이니 내가 거슬러서 쓰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가령 正官格에 印綬가 없는데 運이 傷官으로 행하거나, 財格에 食神이 투출하지 않았는데 運이 七煞로 행하거나, 印綬格에 正官을 쓰는데 運에서 正官과 合을 이루거나, 食神이 七煞을 대동하는데 運이 財로 행하거나, 七煞을 食神이 제압하는데 운에서 偏印을 만나거나, 傷官이 인수를 대동하는데 運이 財로 행하거나, 陽刃이 七煞을 쓰는데 運에서 食神을 만나거나, 건록격에 正官을 쓰는데 운에서 傷官을 만나는 것 등이니 이러한 부류는 다 敗運이다.
그중에 喜神 같으나 실제로는 忌神인 것이 있으니 어떤 경우인가? 예컨대 正官이 印綬運을 만났는데 本命과 合함이 있거나, 인수가 正官운을 만났는데 本命이 七煞을 쓰는 것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忌神인 것 같으나 실제는 喜神인 것이 있으니 어떤 경우인가? 예컨대 正官이 傷官운을 만났는데 本命에 인수가 투출했거나, 財格이 七煞 운으로 행하는데 命에 식신이 투출한 것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또 天干으로 행하는 것은 좋으나 地支로는 행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으니 어떤 경우인가? 예컨대 丙火가 子月 亥年에 생한 경우에 丙丁운을 만나면 身를 돕지만 巳午운을 만나면 원국과 相沖하는 것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또 地支로는 행하나 天干으로는 行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있으니 어떤 경우인가? 예컨대 甲木이 酉月에 生하고 辛金이 투출했으나 正官이 오히려 약한 경우에 運에서 申酉를 만나면 정관이 뿌리를 심지만 庚辛을 만나면 官煞 혼잡이 되거나 官이 겹치는 것과 같은 부류가 그것이다.
또 運의 天干이 동일한 오행인데도 똑같이 쓰이지 않은 것이 있으니 어떤 경우인가? 예컨대 丁火가 亥月에 生하고 年에 壬正官이 투출한 경우에 運에서 丙을 만나면 身을 돕지만 丁을 만나면 壬正官을 合去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또 운의 地支가 동일한 오행인데도 똑같이 쓰이지 않는 것이 있으니 어떤 경우인가? 예컨대 戊가 卯月 丑年에 生하고 운에서 申을 만나면 자연히 長生에 앉게 되지만 酉를 만나면 丑과 合하여 傷官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또 똑같이 서로 冲하는데도 느슨함과 급박함으로 구분됨이 있으니 어떤 경우인가? 年月을 冲하는 경우에는 급박하고 日時를 冲하는 경우에는 느슨하다.
또 똑같이 서로 冲하는데도 가볍고 무거움으로 구분됨이 있으니 어떤 경우인가? 運이 본래 좋으면서 冲을 당하면 가볍고 운이 이미 꺼리는 것인데 다시 또 冲하면 무거운 것이다.
또 沖을 만나도 冲하지 않음이 있으니 어떤 경우인가? 예컨대 甲이 酉官을 쓸 때 卯운으로 행하면 冲하게 되는데 本命에 巳酉가 서로 合이 되어 있으면 충이 무력하며 年支가 亥나 未라면 卯가 年을 만나 회합하여 月의 官을 충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또 한 번 冲하여 兩冲이 되는 것이 있으니 어떤 경우인가? 예컨대 乙이 申정관을 쓰는 경우에 두 개의 申이 함께 하나의 寅을 冲하지는 못하지만 운에서 또 寅을 만나면 운과 本命이 합하여 두 寅이 되어 두 申과 相沖한 것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것이 다 운을 취하는 중요한 법이니 그 자세한 것은 각각의 格에 따라 운을 취하는 章에서 그것을 상세히 설명한다.
○ 行運의 成格과 變格을 논함.
命(四柱)의 격국은 八字에서 이루어지지만 그러나 거기에 運을 배합하면 또한 格을 이루고 격을 바뀌는 권능이 있으니 그 性格과 變格은 격국의 喜忌와 禍福에 비교하면 더욱 중요하다.
무엇을 成格이라고 하는가? 本命의 用神(格)이 이루어졌으나 아직 완전치 못할 때 따라와서 그것을 이루어 주는 것이 그것이니 예컨대 丁이 辰月에 生하고 壬이 투출하여 正官格을 이루는 경우에 運에서 申.子를 만나서 그것과 회합하거나, 乙이 辰月에 生하고 申이나 子와 회합하여 印이 局을 이루는 경우에 운에서 壬.癸를 만나서 그것을 투출하게 되는 것 등이니 이와 같은 부류는 다 格을 이루는 경우이다.
무엇을 變格이라고 하는가? 예컨대 丁 이 辰月에 生하고 壬이 투출하여 정관격을 이루는데 운에서 다시 戊를 만나면 辰 중 戊土상관이 투출되어 상관격으로 변하게 되며, 壬이 戌月에 生하고 丁과 己가 함께 투출하고 地支에서 또 寅이나 午와 合하여 財旺生官格을 이루는데 운에서 戊土를 만나면 戊 중의 七煞이 투출하여 칠살격으로 변하며, 壬이 亥月에 生하고 己가 투출하여 用으로 삼아 建綠用官格을 이루는데 運에서 卯나 未를 만나서 亥와 合하여 木局을 이루면 다시 건록을 변화시켜서 傷官格을 이루는 것이니 이와 같은 무리들이 다 변격이다.
그러나 또한 格을 이룸을 만나도 기쁘지 않음이 있으니 어떤 경우인가? 예컨대 壬이 年月에 生하고 운에서 己土정관이 투출되는 데도 本命에 甲木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또 격을 변경함을 만나도 꺼리지 않음이 있으니 어떤 경우인가? 예컨대 丁이 辰月에 生하고 壬이 투출하여 正官을 쓰는 경우에 운에서 戊상관을 만나더라도 四柱에 甲인수가 있으며, 壬이 亥月에 生하고 己기 투출하여 正官을 쓰는 경우에 운에서 卯. 未를 만나더라도 사주에 庚.辛이 있는 것과 같은 부류가 그것이다. 戌格과 變格은 관계됨이 매우 크니 운을 취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이것을 상세히 살펴야 한다.
○ 喜忌는 天干과 地支에 따라 다름이 있음을 논함.
命中의 喜神과 忌神은 비록 地支와 天干에 모두 있지만 天干은 하늘을 주관하므로 움직여서 행함이 있고 地支는 땅을 주관하므로 조용히 쓰임을 기다리며 또 天干은 한 가지를 주장하지만 地支는 간직한 것이 많아서 福도 되고 禍도 되니 어찌 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유하자면 甲이 酉正官을 쓰는 경우에 庚과 辛을 만나면 官과 煞이 혼잡하지만 地支의 申酉는 이러한 官煞 혼잡의 예를 이루지 않으니 申도 역시 辛의 旺地이므로 辛이 申酉에 앉으면 府의 관리가 다시 또 道의 印을 관장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며, 두 개의 辛을 만나면 官이 중복됨을 범하지만 두 개의 酉는 이 예를 적용하지 않으니 辛이 두 酉에 앉으면 마치 한 府에서 두 郡을 다스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며, 이때 丁이 투출하면 傷官이 되지만 地支에서 午를 만나는 것은 이러한 예가 되지 않으니 丁은 動하지만 午는 靜 하기 때문이며 또 午에는 丁과 己가 함께 간직되어 있으니 그것이 財가 됨을 어찌 알겠는가?
그러나 또한 地支가 禍화 福을 일으킬 수 있는 경우가 있으니 어떤 경우인가? 가령 甲이 酉正官을 쓰는 경우에 午를 만나도 본래 正官을 상하게 할 수 없는데 다시 寅이나 戌을 만나 두 자리가 격리되지 않으면 둘이 合하여 火가 발동하므로 또한 正官을 傷하게 할 수 있으며, 이것을 반대로 살펴 보면 가령 甲이 申月에 生한 경우에 午가 七煞을 제압하지 못하다가 寅이나 戌과 회합하면 두 가지가 局을 淸하게 하고 火가 발동하므로 또한 七煞을 제압할 수 있다. 그러나 地支는 반드시 會合이 있어야 발동하니 이것이 바로 天干과 다름이 있는 것이니 이 한 가지 단서로써 나머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 地支 중의 喜忌神이 運을 만나 투출하여 淸하게 됨을 논함.
地支 중의 喜神과 忌神은 진실로 天干과 다름이 있으니 운에서 淸하게 투출함을 만나면 조용히 쓰일 때를 기다리던 것이 바로 그 쓰임을 만나서 좋아하고 싫어하는 반등이 거기에서 나타나는 것이니 무엇을 透淸이라고 하는가? 예컨대 甲이 酉正官을 쓸 때 辰이나 未를 만나면 傷官이 되는데 運에서 丁상관을 투출하는 것과 같은 부류가 그것이다.
또 命과 運의 두 地支가 회합하여 局을 이루는 경우에도 역시 淸으로 논하니 예컨대 甲이 酉정관을 쓰는 경우에 本命에 午상관이 있고 運에서 寅이나 戌을 만나는 것과 같은 부류인데 그러나 午상관이 年支에 있으면 重하고 日支에 있는 것이 그 다음이며 時 가 午時에 生하고 運에서 寅이나 戌을 만나 회합하여 局을 이룸에 이르러서는 상관의 작용이 완만하고 급박하지 않다. 비록 격국의 성패와 고저가 八字에 이미 정해진 논리가 있어서 命中에 원래 있는 것과 똑같지는 않더라도 이 5년 가운데의 運도 역시 그 禍와 福이 될 수가 있으며 또 월령이란 물건이 운 가운데에 투출하여 淸하면 命中에 원래 있는 것과 차이가 심하게 크지는 않은 것이니 곧 전편에서 말한 行運에 따른 成格과 變格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하나의 팔자가 손에 들어오면 반드시 天干마다 地支마다 상하를 통괄하여 보아야 하니 地支는 天干의 生地가 되고 天干은 地支의 發用(작용을 들어내는 곳)이 되기 때문이다. 가령 命中에 하나의 甲이라는 글자가 있다면 네 地支에 寅. 亥. 卯. 未 등의 글자가 있는지 없는지를 통괄하여 관찰해야 하니 한 글자라도 있으면 다 甲木의 뿌리인 것이며, 命中에 하나의 亥字가 있으면 네 天干에 壬이나 甲 두자가 있는지 없는지를 통괄하여 관찰해야 하나 壬이 있으면 亥는 壬의 祿이 되므로 壬水로 쓰임을 드러낸 것이며, 甲이 있으면 亥가 甲의 장생이 되므로 甲木으로 쓰임을 드러낸 것이며, 壬과 甲이 함께 있으면 한쪽은 祿을 根으로 삼고 한쪽은 長生을 根으로 삼아 두 가지를 함께 쓰는 것이니 運을 취하는 것도 이 방법을 써서 本命 八字를 가지고 天干마다 地支마다 배합할 뿐이다.
○ 시속에서 말하는 格局에 얽매임을 논함.
八字의 用神은 오로지 월령에 의지하며 월령에 용신이 없어야만 비로소 格局을 찾는 것이니 월령은 근본이고 외격은 말단인데 지금 사람들은 경중을 알지 못하고 格局을 얽매어 거짓된 것에 집착하여 진실을 잃고 있다.
그러므로 戊가 甲寅月에 生하고 時에 庚申이 있으면 그것을 분명히 칠살이 제압을 받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것을 오로지 食神의 格이 甲을 만나 福이 감소하는 것으로 여기며, 丙이 子月에 生하고 時에 巳祿을 만나면 그것을 정관격에 祿이 들어와 身을 돕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日의 祿이 時에 돌아온 것인데 官을 만나 파국이 되었다고 여기며,
辛日에 丙이 투출하고 時에서 戊子를 만나면 그것을 辛日干이 정관을 만나고 正印을 만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것을 朝陽格이 丙으로 인하여 성립되지 않는 것으로 여기며, (월령)財가 時의 七煞을 만나면 그것을 칠살을 生하여 身을 공격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時上 편관격으로 여기며, 癸가 巳月에 生하고 時에 甲寅을 만나면 暗官이 파괴된 것으로 여기지 않고 刑合이 격을 이룬 것으로 여기며,
癸가 冬月에 生하고 酉月 亥時에 戊가 투출하고 戌에 앉으면 그것을 월겁이나 건록격이 정관을 써서 통근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공술격에 진실이 있어 불리한 것으로 여기며,
0 癸 0 戊 月劫格 0 癸 0 戊 建祿格
亥 酉 亥 戌 亥 酉 子 戌
辛日이 丑에 앉고 寅年 亥月 卯時인 경우에 그것을 정재격으로 여기지 않고 전실된 공귀격으로 여기며,
辛 辛 0 0 正財格
卯 丑 亥 寅
乙日干이 寅月을 만나고 時에 丙子를 만나면 그것을 木火通明으로 여기지 않고 서귀격을 이룬 것으로 여기는데 이와 같은 잘못된 논리들은 백에 하나도 옳은 것이 없으니 이러한 것은 모두 命理를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논평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 시속에서 말하는 “잘못된 말로 잘못된 것을 전하는 것”을 논함.
八字에는 본래 정해진 이치가 있는데 이치에 밝지 못하므로 마침내 이단이 생겨서 함부로 말하고 잘못 듣는 것이 견고하여 타파할 수가 없다. 가령 干支를 논할 때에는 음양의 이치를 알지 못한 채 속서의 체상가결을 확실한 논리로 여기며, 격국을 논할 때에는 오로지 월령에서 찾아야 함을 모르고 외격에 얽매이는 것을 활용방법의 변화로 여기며, 生剋을 논할 때에는 희기를 살피지 않고 旺함을 손상하고 약함을 부조하는 것을 일정한 법으로 여기며, 行運을 논할 때에는 같은 것 중에도 다른 것이 있음을 따지지 않고 干支가 서로 같은 것은 한 가지 법식으로 여기니,
그렇게 된 까닭을 연구해 보면 하나는 글 가운데 쓰인 글자의 경중에 대하여 그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릇되게 편견을 내는 것이며, 또 하나는 세속의 책들이 지각없이 함부로 지어졌는데도 그 말을 잘못 이해하기 때문에 미혹의 길에 깊이 빠져드는 것이며, 또 하나는 命을 논하고 運을 취하다가 우연히 임시방통으로 부합하기 때문에 마침내 자기 견해를 바꾸지 않게 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옛사람들의 논명 방식에도 잘못 수록된 것이 있으며 혹 수록된 것이 잘못이 아닌데도 다시 또 자기 뜻으로 외격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더욱 사람을 해침이 얕지 않은 것이다.
예컨대 壬申년 癸丑월 己丑일 甲戌시는 본래 잡기 財旺生官격인데(술사들이) 이것을 乙亥時로 간주하여 時上傷官格으로 잘못 논하고 있으니 왕성한 財가 칠살을 生하므로 장차 죽음을 구제할 겨를도 없는데 어디에서 貴를 취할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이러한 부류가 매우 많으니 다 격국을 잘못 받아들인 것이다. 예컨대 己未년 壬申월 戊子일 庚申시는 본래 食神生財格인데 월령을 버리고 이것을 戊日 庚申時의 합격록격으로 간주하려고 하니 본신에 스스로 財와 식신이 있는데 어찌 매우 아름답지 않겠는가? 다시 또 어찌 수고스럽게 庚을 乙과 合하게 하여 局外의 정관을 구하려고 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이러한 것도 매우 많으니 다 외격으로 억지로 받아들인 것이다.
甲 己 癸 壬 財旺生官格
戌 丑 丑 申
庚 戊 壬 己 食神生財格
申 子 申 未
사람들이 만일 마음속에 일정한 견해가 없으면 이치를 살핌이 정밀하지 못하여 이러한 것을 보고 잘못 논하게 되니 어찌 의혹이 없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근일에는 귀격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 또한 왕왕 있음이랴? 술법을 행하는 사람이 반드시 귀명만을 指歸(모범으로 따르는 것)로 여기거나 혹은 근거 없이 떠도는 말을 진실한 근거로 삼거나 혹은 그 生日을 탐지하여 곧 자기 뜻대로 生時에 가하여 귀격이라고 잘못 조작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 사람의 팔자에 時가 확실치 않은 경우가 많으므로 곧 그 본신도 또한 자연히 알지 못할 것인데 만일 命을 보는 자가 그 근본을 연구하지 않고 다만 그가 이미 부귀한 것을 가지고 그 말을 이리저리 맞춰서 서로 따른다면 종신토록 이해할 날이 없음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