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친구

우인의 굴렁쇠 2019. 3. 26. 15:11

   자신의 마음에 맞는 친구를 사귀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렵다고 한다. 자기 중심주의와 지나친 이기주의의 분위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분위기는 세상을 각박하게 만들어 버렸다. 세상이 이러하니 친구를 못사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요즘 청소년들의 친구는 스마트 폰이라고 한다. 그리고 노인들의 친구는 개와 고양이다. 지나치게 자신의 편리를 추구하다 보니까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외로움을 해결해야지, 기계나 동물을 이용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군중속의 고독이 사람을 더 외롭게 만들고 있다. 이제 친구를 사귀는 것 보다 그동안 인연을 맺었던 친구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향 친구들 생각이 난다. 나는 또래들 중에서 가장 늦게 고향을 떠났다. 내 나이 22살때였다. 홀로 논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었다. 그때 고향에 대한 미련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었다. 오히려 후련함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조금 아쉬운게 있다면 어느 여학생과의 이별이였다.솔직히 이별이라고 할 수도 없겠다. 왜냐하면 나는 그녀의 이름을 지금도 알지 못한다. 다만 고등학교 3년 동안 같은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하였고, 서로 마음이 맞아서 이야기를 조금 나누었을 뿐이다. 이름도 연락처도 모른 상태에서 입대를 하게 되어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마저 놓쳤다. 그래서 이별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 것 뿐이다.


   그래도 나는 그녀를 첫사랑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때는 못느꼈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간혹 어렸을때의 기억이 추억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집사람에게는 절대 비밀로 하면서 그때의 추억을 혼자서 회상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실현될 수 없었던 일이고, 이상에 불과하였지만 그래도 없었던 추억보다는 그런일이라도 있었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의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다. 그녀가, 아니, 그 친구가 어디에서 어떻게 늙어가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다.


   회귀본능이라는 말이 있다. 늑대가 죽을 때 자신이 태어났던 곳을 바라 본다는 말과 같은 의미다. 사실 고향이 그립다. 친구들이 그립다. 하지만 고향에 남아 있는 친구는 아무도 없다. 어떤 녀석은 맥시코로 떠났고, 또 어떤 녀석은 미국으로 떠났다. 낙후된 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서 떠난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또 한 녀석은 이미 고인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홀로 남겨진 나는 술과 친구가 되어 버렸다. "추석날이면 소주 한 병 들고 남산 위에 올라 남쪽 하늘 바라보면서 못내 울었다" 누군가로부터 전해들었던 이 말이 정말 오래도록 기억속에 남는다.


   나는 절대 개와 고양이의 친구가 되고 싶지 않다. 개를 친구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항상 이런 말을 한다. "사람은 배신을 하지만 개는 절대 배신을 하지 않는다"고, 솔직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배신을 당하더라도 사람이 좋다. 개가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기억하며 살아갈 생각이다. 인연이 있어서 만났고, 그 인연이 다하여 헤어지게 되었던 모든 사람들을 그래도 한 번 정도는 회상해 봐야 되지 않겠는가? 어렸을때는 가난이라는 짐이 가장 버거웠었다. 그 짐을 이제 털어버렸지만 다시 새로운 짐이 생겨났다. 외로움이다. 세상에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어차피 인생은 외로운 것이다. 익숙해져야 한다. 그 친구는 아직도 26번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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