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2. 28. 강릉
당신의 이름(퍼온글)
김완(시인, 죽은자의 집을 청소하는 특수청소노동자)
나는 죽은자의 집을 청소하는 자, 이른바 특수청소업자이다.
내 이름 따위가 뭐라고, 하지만 이름뿐이랴 때때로 직업도 감춘다. 임대주가 이웃들의 눈을 피해 일해주길 바란다면, 이 집에서 누군가 죽었다는 소문이 퍼져 새로운 세입자를 받기 어려울 상황을 걱정한다면, 신분을 감출 뿐만 아니라 공공연히 속이기도 한다. 때로는 헌 옷을 수거하는 고물상으로, 인테리어 업자로, 벽지와 장판을 바르는 지물포 사장으로, ,
언젠가 한 미술 단체가 죽은 자의 집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나 같은 자를 강연자로 초청하여 '죽음 워크숍'이란 것을 열었었다. 습하고 무더운 8월의 일요일, 안산시 외국인주민지원본부 앞 광장에 둘러앉은 열 명 남짓의 참가자들은 수많은 외국인의 흘끔거리는 시선과 한낮의 뙤약볕을 견디며 한 사람의 죽음을 추모했다.
그녀의 이름은 한윤지, 세월호 사망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침몰사고가 일어나고 일주일이 지나 비로소 시신이 수습되었다. 건설 노동으로 근근히 살아가다가 귀농으로 새 삶을 꾸리고자 제주도로 이주하던 네 명의 일가족, 남편과 아들 혁규는 끝끝내 유해조차 찾지 못했다. 당시 여섯 살이던 혁규가 요동치는 물결에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구명조끼를 벗어준 덕에 한 살 터울의 동생 지연이만 살아남았다.
한윤지의 또 다른 이름은 판응옥타인, 호치민의 봉제공장에서 일하다 한국 남자를 만나 결혼하여 귀화한 젊은 베트남 여성이다. 한 사람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 동시에 베트남 남부의 작은 어촌마을 까마우성에 사는 판반짜이와 응우엔티으아의 장녀이자 판응옥하인의 언니.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몸부림이었을까, 고향을 떠나 타국에 정착하여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했던 이, 하지만 그마저 녹록지 않아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이주하여 좀 더 나은 삶을 개척하고자 했던 사람이다. 나를 초청한 미술가들은 수많은 외국인이 지나는 안산 단원구 원곡동의 광장 무대에 한윤지씨가 베트남에서 살던 작은 방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우리만이라도 그녀를 기억하리라. 참가자들은 그 방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묵념했다.
어느날 밤, 휴대전화 화면을 넘기다가 무심코 세월호 사망자 명단에서 그녀의 이름을 찾아 보았다. 하지만 희생자 전체 명단이 기록된 어떤 기사에서도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한국 이름 한윤지도, 베트남 이름 판응옥타인도, 그녀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러다가 일반인 사망자 명단에서 '현윤지'라는 이름을 찾아냈다. 혹시 이 이름이 한윤지 씨를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명단이 수록된 다른 기사에도 현윤지란 이름만 남았을 뿐이다. 잘못 기재된 것은 아닐까, 진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을까? 궁리 끝에 사망자 전체 명단을 매체에 실은 담당 기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현윤지라는 이름은 어쩌면 한윤지의 오기일지도 모릅니다. 연고자가 아닌 제가 개인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명단을 실어주신 기자님께서 사실 여부를 검토해 주실 수는 없는지요?" 세월호 침몰사고를 뉴스와 기사로만 접할 수 있는 일개 시민에 불과한 자,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이름 석 자 밖에 없는, 법적으로 무관한 자의 연락이었기 때문일까? 나는 단 한 통의 답장과 전화도 받지 못했다.
안산의 한 오피스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의 집 청소를 마치고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정부합동분양소가 있는 화랑유원지에 들렀다. 분양을 마치고 세월호 유족 대기실에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소파와 의자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에게 조심스레 방문한 이유를 밝혔다.
기사에 실린 명단에서 이름을 바로 잡고자 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고, 실례가 안 된다면 유족들께서 세월호 사고의 수습 행정을 맡은 자들에게 한윤지 씨의 잘못 된 이름을 기사에서 바로잡아달라고 요청해주실 수는 없겠냐고, "어차피 돌아오지 않을 사람이잖아요, 이름을 고쳐봤자 이제 무슨 소용이라고요." 언성은 높지 않았지만 누군가의 질타하는 목소리가 무겁게 다가왔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일행 중 한 사람이 말을 건냈다. "거기 바로 잡을 이름을 써놓고 가요, 선생의 이름과 전화번호도 쓰고요, 어린 딸 아이만 남았으니까 이름을 바로 잡아줄 사람도 없었을 거야."
이름을 묻고 기억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여전히 잘 모른다. 하지만 왜일까, 한윤지 이름 석 자는 내 삶에서 영영 지우지 못할 것 같다. 현윤지가 아니라 한윤지, 어쩌면 그 이름은 판응옥타인 씨가 한국인으로서 남긴 단 하나의 권리이자 유산 같은 것은 아닐까? 아직 어린 지연이가 평생 엄마로 기억할 그 이름, 한윤지.
사소한 데 목숨을 거는 자, 매사에 정작 중요한 것은 외면하면서도 고작 글자 한 자에 매달리는 사람, 이런 나를 가리켜 협소한 인간이라고 불러도 달리 변명할 말이 없다. 그러나 세월이 흐려져도 당신의 이름 석 자 만은 누구도 함부로 훼손하거나 누락시키지 못하도록 나는 그런 작은 것만은 지키며 이 세계에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