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달리는 이유
나는 더운 여름이 오면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성북동 길을 달린다. 와룡공원을 향해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오른쪽 기슭에 내가 다니던 동방문화대학원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언덕길 입구에 다다르면 만해의 동상이 나온다. 나는 그곳에서 조용히 숨을 가다듬는다. 예전 같았으면 한숨에 달려 올라갔을 텐데 이제는 한 번 쉬어가는 노련함을 터득했다. 구불구불한 언덕길을 때로는 걷고 때로는 조금씩 뛰어서 올라가는데 멀고도 멀게만 느껴진다. 삶의 활동 영역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좁혀진다는 생각이 든다.
와룡공원의 다리 밑 언덕길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성균관대학으로 통하는 좁은 골목길이 나오는데 그곳에 작은 삼겹살집이 하나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 학교 동료들과 함께 몇 차례 다녀왔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곳에서 소주 한 병을 시켜서 절반을 비운다. 그리고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선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배가 부르고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 두 다리는 더 게을러진다. 한참을 걸어서 겨우 와룡공원에 다다르면 성북동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는 다시 두 다리를 쉬기로 한다.
언덕 아래 좌측으로 길상사라고 하는 절이 보인다. 그 절의 유래가 내 가슴을 먹먹하게 할 때가 있다. 어느 날인가 나는 그 절에 관한 이야기를 확인하고자 동료들과 함께 길상사를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그날 오솔길로 통하는 길목에서 법정 스님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무소유” 그러나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스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기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천 원짜리 한 장을 주고 산나물 비빔밥 한 그릇을 받아서 구석지고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았었다.
대원각 요정의 주인이던 자야는 1,000억 원 대의 대원각 요정의 부지를 법정 스님에게 시주한다. 법정 스님은 한사코 거절하다 결국 성북동 길상사의 주지를 맡게 되고, 자야에게 ‘길상화’라는 법명을 내려 준다. 가난한 집에서 셋째 딸로 태어났던 자야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상황에서 형편상 기생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자야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백석 시인이다. 자야가 대원각의 부지를 법정 스님에게 시주하고 나서 “이까짓 천억 원은 내 사랑 백석의 시 한 줄 만큼의 값어치도 안 된다.”라는 말을 남겼다. 과연 백석이 지은 시란 무엇일까?
“여승”
<백석 지음>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냄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광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이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 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 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 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렀다. 땀이 식고 불어오는 바람에서 차가움이 느껴진다. 그만 일어서야겠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다행히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두 다리가 아니 마음의 피로가 아직 남아 있지만 그래도 성큼성큼 뛰어서 내려갈 것이다. 다시 땀방울이 맺힐 때까지 숨이 차오르도록 달려 내려가야겠다. 허하고 무한 마음을 모두 토해내면서 말이다. 살면서 기쁜 일도 있었다고, 슬픈 일도 있었다고, 그리고 다시 그런 일들이 반복하게 될 것이라고, 그것이 인생이라고,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세상을 향해 부르짖겠다. 내가 달리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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