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마라톤

우인의 굴렁쇠 2018. 10. 30. 12:24

달릴 수 있어서 행복하다.

 


새벽 5, 밖에 비가 내린다.

나는 추위와 비에 대한 충격적인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

젊은날, 동계 군사훈련 도중에 비를 만나서 온 몸이 젖고 두 다리가 마비되는 극한의 고통을 경험했었다. 지금도 그 후유증이 남아 있다.

 

나는 매사에 이런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미친짓이다, 도대체 왜 이런짓을 하느냐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였다. 하지만 결국 포기라는 단어가 싫어서 목적지로 향하게 된다. 솔직히 영상 2도의 날씨에 비바람을 맞아가면서 42.195Km를 달린다는 것은 미친짓이다. 꼭 그렇게 까지 달려야 하는 이유가 있느냐는 말이다. “포기라는 단어가 싫다면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좋은 말이 있지 않느냐 말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주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모두 알고 있다. 그래도 후퇴하지 않고 꼭 도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솔직히 잃는 것은 있어도 얻어지는 것은 없지 않는가? 참가비와 여비 그리고 강추위와 비바람에 맞서야하는 고통을 생각한다면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행위가 분명하다. 나는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18년차 아마추어 마라토너다.


혹자는 운동중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주자들은 그 말을 부정한다. 취미일 뿐이고, 지극히 정상적이고, 건강을 위해서 달린다고, 달리기 만큼 좋은 운동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확한 답을 이야기하는 주자를 나는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했다.

 

포래스토 검프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아메리카 대륙을 36개월 동안 쉬지 않고 달렸다고 한다. 처음엔 무관심하던 사람들이 검프가 장기간 달리는 것을 보고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름대로 해석을 하였다. 여성의 인권을 위해서, 세계평화를 위해서, 환경보호를 위해서 달릴거라고 임의로 추측을 하였다. 하지만 정작 검프가 달리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영화에서는 검프가 달리는 이유를 사랑을 찾기 위한 몸부림으로 묘사하였다.

 

사랑이라는 말, 함부로 할 수 없는 말,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만약에 그 사랑을 찾기 위해서 검프가 달렸다고 한다면 어제 나와 같이 달렸던 주자들은 모두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이 분명할 것이다. 외로워서, 그리워서, 그리고 누군가가 보고파서 그 이름을 머리속에 수없이 새기면서 먼 길을 달렸을지도 모르겠다. 달리는 고통보다 외로움과 그리움을 참는 고통이 훨씬 더 큰거라면서 그렇게 달리지 않았을까?

솔직히 나는 모른다.

내가 달리는 이유를.




용산역

기차는 06:55분에 떠납니다.




춘천

영상 2, , 바람조금.



여기까지 왔는데 사진 한 장은 남겨야지.

지방에서 오신 것 같아 보이는 분이 우의 하나를 줘서 얻어 입었다.

정말 고마웠다. 다음에 주로에서 만나게 될 경우 그 분의 얼굴을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손이라도 한 번 잡아드렸어야 했는데 그냥 고맙다는 인사만 하고 바쁜 걸음을 서둘렀었다.

 



 

04:18:47



어제 내가 달렸던 기록이다.

예전 같으면 4시간 안에 충분히 들어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어렵다. 프로 선수도 아닌데 빨리 달려서 뭐하겠냐마는 본능이라는게 있다. 동물적인 욕구 말이다.

나는 올해 10Km 3, 하프코스 5, 그리고 풀코스를 1회 달렸다.





나는 2001년도부터 달리기를 시작하였다. 그때는 5Km10Km를 주로 달렸다. 그러니까 집 주변이나 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 뛰어보는 정도였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간혹 군대나 직장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실시하는 달리기 대회에 몇 번 참가해 본 경험은 있었지만 하프코스 이상 으로 먼 거리를 달려본 경험은 없었다.

2003. 10. 3. 처음으로 풀코스를 달려보았다. 이날의 기록이  아마 나를 18년 동안이나 달리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구파발에서 임진각까지 달렸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자 1등과 경쟁하였다.

이날 나는 16Km지점까지 여자 1등을 앞서 나갔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추월당하여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지켜 봐야만 했다. 이분들도 지금까지 달리고 계신지 모르겠다. 이제 모습들이 많이 변했을 것이고, 주로에서 만나더라도 전혀 알아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날 여자 1등은 1:27, 나는 1:29분에 피니쉬라인을 통과하였다.






자주 달리다 보니까 입상도 몇 차례 하게되었다.




쌓아둔 기록증을 찾던 중 젊은 시절에 찍었던 사진 한 장을 발견하였다. 우와, 그때는 몰랐었지만 지금보니까 멋있다. 머리카락이 풍성하였고, 긴 머리카락이 눈까지 덮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옛날 사람들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사람은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나의 경험상 전혀 틀리지 않는 말이다. 아직도 나는 엄마가 그립고, 엄마가 해 주었던 칼국수며 된장국의 맛을 기억한다.

 

내일은 두툼한 모자를 하나 사야겠다. 목덜미까지 깊게 눌러 쓸 수 있는 따뜻한 모자를 살 생각이다. 그래야 이번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테니까. 한 여름내 쓰고 다녔던 하얀색의 낡은 모자는 깨끗하게 빨아서 보관해야겠다. 내년에 다시 써야하니까. 사람들은 여름에는 더워서 죽겠다고 난리고, 겨울에는 추워서 죽겠다고 난리다. 하지만 나는 여름을 꺼려하지 않는다. 겨울의 추위가 두려울 뿐이다.

 

같이 달리는 민이라는 주자가 카톡에 글을 보내왔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자기가 선택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부정적인 쪽을 택하면 부정적인 방향으로, 긍정적인 쪽을 택하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어집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날이 그날이라고 여기면 늘 그날이 그날이고, 순간 순간 날마다, 달마다, 늘 새롭게 여기면 매일 매일이 감사와 축제의 연속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이제 그만 달려라고 만류한다. 그래서 나는 달리고 난 이후의 후유증을 집사람에게 말하지 못한다. 만약 내가 몸이 아프다는 말을 하면 집사람은 그게 모두 마라톤 때문이라고 당장 그만 두란다. 어제 달렸던 마라톤의 후유증이 심하게 엄습하고 있다. 두 다리를 절룩거리고, 몸은 비실 비실 힘이 없다, 감기에 걸리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 다행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후유증을 끙끙거리면서 숨겨야한다. 비극이다.

 

어제 기차역에서 70대의 노 선배를 만났다. 마라톤에 대한 영웅담을 자신있게 이야기 하고 계셨는데 사실 부러웠다. 그 연세에 나보다 빠르게 달리고 계셨기 때문이다. 마라톤을 접을까 말까 망설이던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사실 나는 속도감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가능하면 풀코스는 뛰지 않을 생각이였다. 마라톤을 처음 시작하던 때처럼 10Km나 달리면서 여유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그 노인을 만난 이후로 생각에 변화가 왔다. 나도 70살까지 풀코스를 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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