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思索)
낡은 책(자평진전)을 펼쳐 본들 어떻게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나는 도무지 어렵기만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책을 여러날 동안 붙들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얻은게 없다. 사실 고서(古書)를 통해서 진리를 찾는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무리한 도전이 아니였나 생각해 본다. 이제부터라도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하자.
책 한권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야 얼마든지 있지만, 어떤 일이든지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면 다시 되돌아 올 수 있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분간 자평진전을 덮고 오래전부터 궁금해 했던 낯선 책 한 권을 읽어보기로 했다. 그 책 속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고, 어떤 사람이 등장하고, 또 나에게 어떤 감정을 안겨줄 것인지 기대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월든
“내가 월든 호숫가에 간 목적은 그곳에서 생활비를 덜 들여가며 살자거나 또는 호화롭게 살자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내 개인적인 용무를 보자는 데 있었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으며,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 글의 작가는 “헨리 데이빗 소로우”다. 소로우는 1817년 미국 콩코드에서 태어나 1862년에 콩코드에서 사망하였는데 그때 나이 44세였다.
그는 숲 속에서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숲 속에서의 삶과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통찰하여 그것을 책으로 남겼는데 가난한 학생들을 위하여 특별히 쓴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그 밖에 독자들은 “자신에게 해당되는 대목만 받아들이면 된다”라고,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에 대한 호평은 실로 놀랍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 대해서 호평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 나중에 이야기 하겠지만 문학적인 가치를 떠나서 근본적으로 이 책은 재미가 없다. 물론 문학적 취향이 있는 사람들은 충분히 호평을 할 수 있을만큼 좋은 책이 분명한 것 같다.
“지금 지구 상의 모든 도서관들이 불에 타고 있고, 거기서 단 한 권의 책을 가지고 나올 시간이 너에게 허용된다고 할 때 네가 택할 책은?” “월든”
“나는 큰 즐거움을 가지고 ”월든“을 읽었으며 그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다.” (마하트마 간디.)
“느와이에 백작 부인 ”월든“의 경이로운 문장들을 읽어 보십시오. 그 문장들은 우리의 가장 절실한 체험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푸르스트)
세상에서 이보다 더 훌륭한 찬사가 있을까? 이 정도의 호평이라면 정말 가치 있는 책이라는게 충분히 입증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가 남긴 “시” 한편에서 작가의 마음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철로는 나에게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어디서 끝나는지
결코 보러 가지 않는다.
철로는 계곡 몇 개를 메워주고
제비를 위해 둑을 쌓기도 한다.
철로는 모래를 휘날리며
검은 딸기를 자라게 한다.
작가 소로우는 독서의 진정성과 고독에 관해서도 분명하게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이야기 하고 있다. 나는 소로우가 말했듯이 “자신에게 해당되는 대목만 받아들이면 된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그의 책 속에서 독서의 진정성과 고독에 관한 부분을 일부 발췌해 보았다.
“제대로 된 독서, 즉 참된 책을 참된 정신으로 읽는 것은 고귀한 운동이며, 이 운동은 현대의 풍습이 높이 평가하는 어떤 운동보다도 힘든 노력을 요구한다.”
“우리는 너무 밀집하여 살기 때문에 서로 방해가 되고 서로에게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서로에 대한 존경심을 잃어 버린다. 덜 자주 만나도 중요한 대화를 얼마든지 나눌 수 있다.”
나는 소로우의 인간 존중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을 발견하고 몇 차례 반복하여 읽어 보았다. 그리고 그 긴 문장을 여기에 옮겨 실었다. 그는 노예제도와 전쟁을 반대하여 세금의 납부를 거부하였다고 한다.
“첫 번째 여름이 끝나가던 어느 날 오후, 나는 구둣방에서 구두를 찾으려고 마을에 갔다가 체포되어 투옥을 당했다. 그 이유는 다른데 서도 기술한 바와 같이 나는 의사당 문 앞에서 인간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축처럼 매매하는 국가에게는 세금을 낼 수 없었고, 그 권위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숲에 들어간 것은 정치적이 아닌 다른 목적이 있어서였다. 그러나 한 인간이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그의 뒤를 쫓아와 그들의 더러운 제도를 가지고 그를 거칠게 다루며, 어떻게 해서라도 필사적인 상황에 몰린 자신들의 “괴이한 공제조합”에 그를 강제로라도 붙들어 매려고 한다.“
이 책 속에는 정말 많은 은유와 아름다운 사색의 글들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나의 수준에서 보았을 때 너무 고차원적인 철학의 논리가 전개되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의 주요 목적은 무엇이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단은 무엇인가?”
나는 인생보다 책의 제목에 의미를 두고 있었는데 책을 읽어 나가면서 “월든”이 호수의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소로우가 책속에 기록한 전설을 통해서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전설에 의하면 옛날 옛적에 인디언들이 바로 이 자리에 있던 산 위에 모여 주술 의식을 올리고 있었는데 그 산은 지금 월든 호수가 깊은 것 만큼이나 하늘 높이 치솟은 그런 산이었다고 한다. 인디언들은 주술 의식을 올리면서 신을 모독하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들이 이러고 있는 동안 산이 흔들리면서 갑자기 가라앉았다는 것이다. 이때 ”월든“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노파만이 도망쳐 목숨을 구했으며 호수의 이름은 그 노파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어느 TV의 프로가 떠 올랐다. 소로우가 바로 그런 삶의 체험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소로우는 월든 호숫가 주변의 자연에 대해서 그 변화를 상세히 기록하고, 자신의 생각을 은유적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 나는 숲에 들어갈 때나 마찬가지로 어떤 중요한 이유 때문에 숲을 떠났다. 내게는 살아야 할 또 다른 몇 개의 인생이 남아있는 것처럼 느꼈으며 그리하여 숲 생활에는 더 이상의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던 것이다.”
“ 나는 실험에 의하여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것을 배웠다. 즉 사람이 자기 꿈의 방향으로 자신 있게 나아가며, 자기가 그리던 바의 생활을 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는 보통 때는 생각지도 못한 성공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시 한 줄을 장식하는 것이
나의 꿈은 아니다.
내가 월든 호수에 사는 것보다
신과 천국에 더 가까이 갈 수는 없다.
나는 나의 호수의 돌 깔린 기슭이며
그 위를 스쳐가는 산들바람이다.
내 손바닥에는
호수의 물과 모래가 담겨 있으며,
호수의 가장 깊은 곳은
내 생각 드높은 곳에 떠 있다.
내가 이책에 대해서 호평을 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재미가 없다는 점 뿐이다. 솔직히 자평진전보다 더 재미가 없다. 나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페이지의 줄과 칸을 구별하지 못하고, 이곳 저곳을 반복하여 읽다가 잠에 빠져드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모든 책을 재미로 읽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흥미가 없다고 하여 그 책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더욱 아니다. 또한 문학적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 차이가 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독후감을 쓰는 이유가 있다. 이 책을 읽느라고 투자한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가 첫 번째요. 글을 쓰는 습관을 이어가겠다는 투지가 두 번째요. 그리고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는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찬사를 하는 책을 보고서도 내가 재미를 못 느끼는 이유는 뭘까? 아마 나이 때문인 것 같다. 이미 긴장력을 상실해 버렸는데 무슨 향기를 느끼고, 맛을 느낄 수 있겠는가?
솔직히 단물 쓴물 다 빠져 버린 나이에 무슨 “너도 밤나무 그릇으로 만족하던 시절”을 기억할 수 있으며 “자네는 어찌하여 어린 처녀처럼 눈물에 젖어있는가”라는 감성적인 말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단돈 만원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 밤 잠을 지새우는 현실을 이 책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오늘도 긴 밤을 지새운 나머지 두 다리가 후들거린다.
나도 젊었을 때는 3박4일 동안 밤을 지새워가면서 책을 읽었던 시절이 있었다. 무협소설 “영웅문”과 중국의 역사 소설 “삼국지”를 읽을 때는 심지어 일주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읽은 적도 있었다.
일장당관(一將當關), 장비가 장판교 싸움에서 조조의 10만 대군을 물리친 이야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끌리는 책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