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오늘은 데칼코마니 공부할 시간이에요.
도와지를 펴시고 한쪽 면에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물감을 짜세요
그리고 도와지를 반으로 접어서 문지른 다음에 펼쳐보세요
우인 학생,
예, 선생님.
무엇이 보이는가요?
그냥 물감이 뒤죽박죽 되었어요.
그래요?
그러면 그것을 자세히 보면서 무엇이 보이나 상상해 보세요.
나는 일용직 노동자이다.
일명 일당이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사는 인생이다.
세상 사는 게 다 그렇듯이 우리 일당의 세계도 경쟁이 만만치 않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정도가 심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인간 대접이라고는 콧구멍만큼도 없다.
우리 일당들은 항상 줄 끊어진 빤스 취급을 당한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아예 일이 없다.
일당이라고 해 봐야 한 달에 고작 며칠 일하는 게 전부다.
그것마저도 운이 좋아야 할 수 있다.
정말 더러운 세상이다.
가진 놈들은 배고픈 자의 빵을 빼앗고,
힘 좀 쓴다는 놈들은 허약한 자를 패고 짓밟아 버리는 정말 각박한 세상이다.
온갖 허세가 판을 친다.
꼴 같지 않은 놈들이 백구두에 빙글빙글 지르박을 추면서 샴페인에 취하고,
조금 배웠다는 놈들은 보이스피싱으로 서민들의 통장을 노린다.
그렇다면 권력자들은 무엇을 하는가?
기대가 무너져 버렸다.
정말 화가 난다.
값비싼 양복이나 걸치고,
어퍼컷트 쇼를 펼치면서,
그야말로 자기만의 만족에 취해서 산다.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다.
나는 이런 세상이 싫다.
우리 일당들은 왜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새벽마다 일찍 일어나서 인력시장으로 달려간다.
"사장님,
오늘 저 한 번만 써 주십시오.
글쎄?
우씨는 말이지,
힘이 너무 약해서 말이지,
벽돌 세 장 짊어질 수 있겠어?
두 장까지는 가능합니다.
우 씨는 말이지
그것이 문제야.
우 씨도 잘 알잖아
이 바닥에서는 벽돌 세 장이 기본이야, 기본.
네 장 이상 짊어지면 초과 수당 더 주고 말이지
두 장 가지고는 안 돼.
사장님, 그러니까 시간을 늘려서라도 기본을 채우겠습니다.
시켜만 주세요.
음, 그려?
나도 우 씨가 하도 딱해서 말이지,
오늘 박가 놈,
그놈 하루 쉬라, 하고,
우 씨한테 일을 줄테니까 농땡이 피지 말고 열심히 하소.
예, 사장님 감사합니다."
나는 오늘 이렇게 해서 일을 구하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 아니, 우형, 낫 살이나 먹어가지고 말이야,
일감이나 뺏어가고, 어딜 그럴 수가 있어,
정말 열 받네."
"여보게 아우님,
나, 그런 놈 아니야,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나 평생 의리 하나로 먹고 살아온 놈이야,
자네가 하고 싶으면 해.
나, 갈게
결국 나는 오늘도 일을 구하지 못했다.
벌써 삼일째 굶는 중이다.
나는 도시의 흐름 한 골목길을 따라서 깊숙한 곳까지 걸어 들어갔다.
시궁창 냄새도 나고,
어디선가 똥 냄새도 풍긴다.
차라리 우리 일당들에게는 이런 곳이 편하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관심받을 필요도 없이 그냥 편하게 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골목의 구석진 곳에 서 있는 전붓대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오늘도 공치는 구나,
비 온다고 공치고,
허약하다고 짤리고,
후배 놈한테 밀리고,
세상 사는 게 비참하구나,
그래도 나는 살아가는 이유가 있다.
꿈이 있기 때문이다.
꿈이.
스르르 잠이 온다.
나는 잠을 자는 동안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다.
잠이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신의 선물이다.
나는 항상 잠 속에서 옆집 숙이를 만난다.
소꿉장난 하던 그 귀여웠던 숙이는 어느 날 서울로 떠났다.
그리고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친구 철이도 가끔 꿈에 찾아온다.
항상 친구들 뒤에서 줄줄 따라만 다니던 놈이 똥을 밟았던 재수 더럽게 없던 놈이다.
그놈도 소식이 끊어진 지 오래다.
잠에 깊이 빠져든다.
나는 오늘도 사뿐사뿐 꿈길을 따라서 어디론가 가고 있다.
깊은 숲길이 나온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빽빽하게 나무와 풀들이 우거져 있다.
그 답답하고 먼 길을 한참 동안 걸었다.
드디어 숲길이 끝나고 이번에는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푸른 잔디밭이 나온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거대한 바위가 하나 보인다.
나는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런데 그 바위 위에 뭔가가 앉아 있다.
앗 호랑이다.
정말 기상천외한 꿈을 꾸고 있다.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싸가지 없이 호랑이가 담배를 피워.
어쨌든 잘 됐다.
순간 나는 저 놈을 잡아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들도 삼일을 굶어 봐라.
안 잡아먹 게 생겼나.
그래서 나는 호랑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있네, 여기 있어,
거지 아니야?
행색은 남루해 보여도 거지는 아닌데요.
노가다 풍인데요
뭐, 노가다?
일단 빨리 묶어,
노가다들이 깡말랐어도 힘이 좋아, "
갑자기 누군가가 나의 팔을 뒤로 꺾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신들 누구요?
가만있어, 가만있어,
아니 누구냐고요?
정신분열이 그렇게 심한 것 같지는 않네요
그렇게 걱정할 단계는 아닌 것 같아요
뭐, 뭐, 정신분열?"
뿌잉 삐웅 삐웅
어디선가 엠블런스가 급하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여오고 있었다.
"여보 쇼,
나, 정신병자 아니야,
일 더하기 일은 이고,
이 곱하기 이는 사야.
정신병자 아니라고,
가만있으라니까, 가만있어,
일단 이놈 주둥이부터 봉쇄시켜.
갑자기 돌변할 수 있으니까 조심하고,
악쓰고 소리 지르고 꽥꽥거리면 골치 아파,
이봐, 나, 정신병자 아니라니까.
싸인, 코싸인, 탄젠트, 미분, 적분, 이런 거 다 알아.
나, 정상이야,
야, 뭐해 빨리 입부터 봉쇄시키라니까,
상태가 보기보다 심각하네
중증이구먼, 중증이야.
나, 정말 정신병자 아니라니까,
당신들 지금 실수하고 있는 거야,
실수하는 거라고,
야, 빨리 묶어 갑자기 발작할 수가 있어,
위험하니까 단단히 묶어라고,
때마침 나의 입에 재갈이 물려지고,
검은 천이 눈을 덮었다.
그리고 나의 정신은 희미해져 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양쪽 귀를 통해서,
누군가의 주고받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여보 쇼, 형씨,
쓸개는 중국산도 일억 원씩 한단 말이요
국산이니까 이억 원을 줘야 되지 않겠소?
국산도 국산 나름이지 이거 다 낡아 빠진 것을 이억 원씩이나 달라고 하면 곤란하지?
일억 오천 좋다.
눈깔도 하나에 일억 오천, "
아니, 이놈들
가만히 보니까 장기 매매범들 아니야?
세상이 아무리 각박하다지만 이런 짓을 해야 되겠어?
나는 겁보다도 성질이 나기 시작했다.
세상에 아무리 할 일이 없다지만 장기 밀매까지 해야 되겠냐고?
정말 말로만 듣던 장기 매매범을 내가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내가 어떤 놈인지 잘 모르는 모양인데
나도 깡다구 하나로 살아온 놈이야.
때마침 다시 거래가 시작되는 듯했다.
형씨, 그러면 붕알은 얼마 줄 거요?
뭐, 뭐, 붕알까지,
이 개쌔끼들이 정말,
우인 학생
우인 학생
왜 소리를 질러?
수업 시간에 자지 말라고 했잖아,
앞으로 나와요.
그리고 수많은 세월이 흘렀다.
나는 대한민국의 영광스러운 국민이 되었다.
악의 뿌리를 뽑고 선을 위해서 항상 앞장서는 일등 국민 말이다.
나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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