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농단 수사 속보입니다. 2013년 12월,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윤병세 외교부장관과 황교안 법무부 장관, 그리고 법원행정처장이던 차한성 대법관을 불러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을 지연시키고, 또 결과를 바꾸라는 의견을 전달한 정황…앞서서 저희도 전해드렸죠. 그런데 이 회동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졌고, 특히 '청와대가 드러나지 않게 하라'는 지시까지 있었던 것으로 검찰이 파악했습니다. 역시 김기춘 전 실장의 진술을 통해서입니다.여성국 기자입니다
지난 14일 검찰에 소환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해 굳게 닫았던 입을 열었습니다.2013년 당시 소송을 미루고 결과를 바꾸라고 대법원에 요구한 것은, 박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였다는 내용입니다.검찰은 특히 김 전 실장에게서 삼청동 비밀 회동이 있기 한 달 전쯤인 2013년 11월,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가 드러나지 않게 하라'고 지시했다"는 취지의 진술도 확보했습니다.김 전 실장은 또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 대신 외교부가 나서서 하라'고 지시했다" 고 말한 것으로, JTBC 취재결과 파악됐습니다.검찰은 이런 내용이 담긴 문건도 외교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했습니다.또 다른 문건에는 '비서실장-대법원장 말씀자료'라는 제목으로 청와대가 대법원에 강제징용 소송에 관해 전달할 구체적인 요구가 적혀 있었습니다."강제징용 재판이 피해자 손을 들어주는 방향으로 확정되면 한·일관계가 어려워진다"거나, "재판을 미뤄주고 전원합의체에 올려 결론을 바꿔달라"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집니다.박근혜 정부의 재판 개입이 은밀히 이뤄지고 있을 때, 정부의 공식 입장은 "법원의 판단을 지켜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다.
나는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일본에 강제로 징용을 다녀왔다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선 자랑할 일이 아니잖는가? 그렇다고 그 사실에 대하여 창피하게 생각해 본 적은 전혀 없다. 다만 가난했기 때문에, 못 배웠기 때문에, 출세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불행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에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하여 일본강제징용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회자되는 것을 보고 눈길이 가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장관 그리고 수뇌부들이 전범국가의 전범기업을 위해서 자기 나라의 피해자들에게 불리하도록 밀실에서 일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대통령은 어떤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매수자가 되었고, 사법부는 또 어떠한 이익을 위해서 매도인이 되어야 했는지 궁금하다. 진정, 이 나라에는 힘 없고 약한 자들이 의지할 곳이 없다는 말인가?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과거의 일을 자주 이야기했다.
“형에게 영장이 나왔을 때 나는 먼저 부모님 걱정을 하게 되었다. 형이 군대에 가게 되고, 다시 나에게 영장이 나오게 된다면 부모를 모실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은 형 대신 내가 군대에 입대하는 것이였다. 그러면 형이 부모 곁에 남아서 부모를 모실 수 있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형 대신 군대에 가겠다는 말을 하였지만 어머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형을 대신하여 입대를 하였다.
다행히 해방이 되어 나는 살아 돌아올 수 있었지만 그때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형은 한량이 되어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국땅에서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던 나의 희생은 결국 형 때문에 아무런 보람도 없이 끝나버렸다. 그래서 나는 형을 미워 한다.“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굳이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영문도 모르고 이국땅에서 죽어야 했던 사람들의 억울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우리 아버지 처럼 살아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그분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정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살아 돌아온 사람들 중에서 신체적인 불편함과 정신적인 후유증을 격지 않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런데 그분들을 다시 시장에 매물로 넘겨서 거래를 했던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장관 그리고 수뇌부들이라면 과연 누가 용서할 수 있겠는가?
이제 그분들은 모두 돌아가셨다. 물론 연로하신 몇몇 분이 살아남아 있겠지만 결코 시간이 길지 않을 것이다. 그분들마저 죽고 나면 일제강점기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서서히 잊혀질 것이다. 나는 그분들의 과거사가 정리되지 못한 채 끝나는게 두렵다. 그리고 재판거래를 하였던 자들이 면죄부를 받게 될까봐 두렵다. 나는 강제징용피해자의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과거가 궁금하였다. 그래서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지원과에 정보공개청구를 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분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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